나는 나이 육순이 넘도록 부끄러운 일이지만 직접 농사를 지어본 일이 별로 없기 에 그 소득의 즐거움을 모르고 살아왔다.
도시에서 태어나 성장한 까닭에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막연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시골에 정착해서도 집안에는 그냥 꽃나무를 심고 풀이나 뽑고 하는 게 소일거리였다. 그나마 그림에 열중하느라 정원을 방치해놓았더니 이것은 풀밭인지 꽃밭인지 모르게 돼 버렸다. 그러던 것을 올해는 용기를 내 10여 평의 뒤뜰에 옥수수, 가지, 방울토마토, 고추, 단호박 등을 몇 포기씩 심었다.
내 입에 들어가는 소중한 것들을 남 보듯 살아온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이다. 그러면서 새로운 발견인 듯 싶게 그 작물들이 주는 기쁨이 참으로 큰 것임을 느끼게 된다. 눈뜨기가 바쁘게 달려 나가 밤 사이에 얼마나 자랐나 살펴보면 대견한게 꼭 손주 녀석들 보는 것 같은 마음이다.
방울토마토는 얼마나 키가 자랄까 지줏대는 몇 센치나 버텨 줘야 할까, 남편과 서로 의견을 나누면서 생각보다 훌쩍훌쩍 커가는 게 얼마나 놀랍든지 살아온 세월이 한편으로는 또 다른 무식의 단면이였음을 인정하게 된다.
대나무 가지들을 잘라다 단호박 넝쿨들을 올리면서 내 딴에는 마치 집을 짓는 것 같은 공사였다.
요즈음은 매일 아침마다 방울토마토 한웅큼씩 그 탱탱한 육즙을 즐기면서 입이 귀에 걸리곤 한다. 내가 키운 것이라 더욱 맛이 있는게 아닌지, 단호박 첫물 두덩어리는 딸애에게 건네주고, 오늘은 늦게 심은 탓에 이제야 수확한 옥수수를 압력솥에 쪄서 남편과 오순도순 먹으면서 오메 맛 있는거, 그래 이 맛이야. 내년에는 좀 일찍 서둘러서 옥수수도 몇 포기 늘리고 올해 못 심은 것들을 꼽아 본다. 오이 깻잎 쑥갓 등등 땅이 열 평만 더 있어도 좋으련만…
손주 녀석들 불러다가 옥수수 따는 재미도  알려주고 싶다.
러시아 사람들은 저마다 주말이면 다차라는 이름의 시골 농장에 달려가 채소류는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한다고 들었다. 정부에서도 정책적으로 적게는 200평 정도의 땅들을 분양해 모든 가구들에게 다차는 생활의 한 부분이 된지 오래다. 러시아 경제가 파탄 직전까지 곤두박질 쳤을 때도, 농산물 가격은 안정적인 것도, 나라를 지탱한 힘도, 그들의 자급자족한 생활형태 때문이리라. 휴가철이 되면 모스코바가 텅 비도록 자기들의 다차에 몰려가 농사에 힘쓰는 모습이 참으로 건강한 생활상이라 여겨진다.
우리나라처럼 단체 관광을 가노라 법석이지도, 해외에 유명 백화점 쇼핑에 열중하노라 열내지는 않을 것 같다.
또한 우리가 잘 아는 쿠바는 미국이 그 유명한 경제 봉쇄를 하는 동안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모든 빈 땅에 스스로 일구어낸 농산물때문이라고 들었다.
먹을 것을 자급자족 한다는 것은 바로 국가 경쟁력이고 마지막 자존심이 아닐지. 비록 몇십년이 지난 고물 자동차를 조이고 닦고 해서 굴려야 하는 낙후된 경제지만 길거리에 모여 탱고를 추며 즐기는 그들의 삶의 여유를 정작 세계 몇 번째로 잘 산다는 우리는 잊은 지 오래이지 아닌가 싶다.
며칠 전 우연히 라디오에서 미래 창조 과학부 모 인사의 대담 내용을 들었다. 요지인즉 앞으로 IT 산업이 세계 대세고 그 방향으로 개척하지 않으면 먹고 살수 없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같은 나라에서는 그 척박한 땅에서 잘 살 수 있는 것은 소수의 IT산업이 그 나라를 먹여 살린다는 이야기이다.
나 같은 시골 할머니가 미래 창조 과학부 인사의 말씀에 어찌 토를 달랴마는 나는 되묻고 싶은 말이 있다. 우리과학이 발전을 거듭하여 우주에 정거장을 두고 드나든다 해도 그 우주선 안에서도 우리는 먹어야 할 것이며 그 먹는 것은 우리네 농산물이지 미래 창조 과학이 만들어낸 새로운 식량은 아닐 것이다.
지금 우리네 자녀들은 유치원도 들어가기 전부터 영어단어를 달달 외워야하고, 초등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손에 스마트 폰이 들려야 하고, 집집마다 통신비 부담이 가계경제에 부담이 만만치 않다.
온 국민이 스마트폰을 위시한 IT산업의 거대 기업을 위한 들러리에 줄서기를 당하고 있다는 이 생각이 어찌 이 시골 할머니만의 생각이랴,
왜 우리는 획일적인 방향으로만 내모는 것인지 그것이 슬프다. 자살률 세계 몇위 라는 오명에 내몰리는 젊은이들의 마지막 선택이 아닌가 싶어 가슴이 시리다.
인간의 삶의 진정한 이유와 목적은 타고난 정체성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행복이란 그 길을 가면서 얻어지는 부산물이 아닐지…
난 오늘 아침에도 방울토마토 몇 알에 행복할 수 있어 감사했다. 작고 소박한 이 텃밭이 내 자리이기에 소중한 것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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