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여름은 폭염이 맹위를 떨치는 날씨가 계속 되더니, 어느덧 조석으로 가을을 재촉하는 쾌적한 바람이 반갑기만 하다.
결실과 천고마비의 계절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지난달 중순 땅끝해남 양무리교회에서 장학금을 지급했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재원을 축적하는데 사연도 많았다.
우리가 익히 아는 바는 교육은 나라의 백년지계라 했던가, 옛 성인 맹자도 인생의 삼락 중에 천하의 영재를 기르는 일을 최고의 이상으로 삼았다.
장학사업이 사회의 다른 어떤 사업보다 귀하고 보람찬 것은 영재들을 부모의 책임과 나라의 시책을 대신해 행하기 때문이다.
장학사업은 사회에 정의와 공평을 심는 미래의 식목사업이다.
소외와 차별을 없애는 사회사업이다. 그러기에 뜻이 깊은 독지가나 참다운 사회사업에 기여하고자 원하는 각종 사회단체들이 장학사업에 앞다퉈 열과 성의를 투자하는 이유이리라.
모 기업회장은 우수한 사람 한명이 천명 만명을 먹여 살린다고 했다. 일년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는 게 요즘이다. 10년 20년 뒤를 예측하는 건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기에 해답은 이런 변화의 물결 속에서 대처할 수 있는 미래의 인재를 찾아서 키우는 것이리라.
송지 달마장학회, 동백장학회, 해남종합병원 행촌장학회가 그렇다. 더하여 해남 양무리교회 장학회다.
많은 장학재단 가운데 교회 장학회가 구름 위의 산 봉우리처럼 우러러 보이는 것은 많은 교인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근검절약으로 생활비와 헌금을 아끼고 쪼개서 기금을 모았기 때문이다.
성서에서 부자의 금 삼량보다 가난한 여인의 엽전 세푼이 더 귀하다 하였고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해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해 지리라 하였고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면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고 하였다.
같은 금전이라도 그 금전이 어떻게 모아졌으며 그 금전에 어떤 깊은 사연들이 깃들어 있는가가 중요하다. 전달된 장학금에는 십자가의 정성이 가득차 있기에 어느 단체나 어느 독지가가 주는 장학금보다 의미가 있다.
저작권자 © 해남우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