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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가 약봉지를 들고 왔다. 좀처럼 약 먹기 싫어하는 녀석이 웬일인지 약봉지를 쥐고 싱글벙글이다.
어, 약봉지가 좀 다르네. ‘따뜻한 마음을 지니는 약’ 자세히 보니 약국 이름이‘우리반파이팅 약국’이다. 안에 든 약을 꺼내보고, 약봉지에 써진 경고 글을 읽으면서 딸의 미소가 내 얼굴로 옮겨와 나도 역시 벙글어진다.
약사는 진이 담임인 서초등학교 4학년 6반 강주영선생님이었다. 칭찬으로 아이들을 교육하는 이 선생님은 마음이 참 따뜻하다. 또 부모들에게 학교 소식을 담은 편지를 거의 매달 보내고, 아이들 일기장에는 꼭 답글을 예쁜 글씨로 잔뜩 적어 놓는 선생님이다.
이 약은 갖가지 과자에 친구를 사랑하게 되는 약, 몸이 더욱 튼튼해지는 약, 즐거워지는 약, 글씨가 반듯반듯 해지는 약, 자신감이 쑥쑥 커지는 약이란 스티커가 붙어있다.
그리고 주의사항에 복용하는 사람 눈에서 눈물이 나거나 가슴이 찡한 증세가 있을 수 있다는 둥, 잠자리에서 복용했을 때는 이를 닦고 자라는 둥, 어린이의 손에 닿게 두어도 된다는 둥 재미난 문구까지 적혀 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도 진이는 약을 먹을 생각을 않고 냉장고에 모셔두고 있다. 먹지 않고 보기만 해도 좋은 모양이다. 하긴 진이가 가져온 것은 과자가 아니라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이었으니 이미 배가 불렀을까.
운동회 날이 지나고 진이는 냉장고에서 약봉지를 꺼내들더니 ‘몸이 더욱 튼튼해지는 약’을 골라 먹었다. 뒤에서 1등한 달리기 실력 때문일 게다.
강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콩알 하나도 나눠먹기’‘상대방에게 가슴 아픈 말 하지 않기’란다. 아이들은 교사들에게서 공부뿐만 아니라 품성과 태도 등 보이지 않는 많은 것을 배우는 것 같다.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들여다 보다 냉장고에서 약봉지를 꺼내 보고 있자니 나의 초등학교 5학년 시절, 담임 선생님이 떠오른다.
그때 우리 반은 때때로 점심시간에‘우주에 생명체가 있는지’ 등의 주제로 편을 나눠서 토론에 열을 올렸다. 또 연극이나 역할극을 참 많이 했다.
돌이켜보면 참 즐거웠고, 시야가 크게 열렸던 경험이었다. 그래서 이때가 내 인생 곡선을 그릴 때마다 가장 중요한 시기 중 하나로 항상 기억되는 지점이다.
선생님은 우리들과 함께 공을 차면서 눈높이를 맞추고, 많이 칭찬해주고, 토론수업을 자주하고, 아이들이 직접 수업을 진행하도록 해 이해를 돕거나, 연극이나 역할극을 통해 창의력을 키워주었다.
누구에게나 잊지 못할 선생님이 있다.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내 딸들도 인생에 두고두고 기억되는 선생님을 만났으면 한다.
이 번 스승의 날에는 모처럼 선생님을 찾아뵙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5월은 참 감사할 일이 많은 달이다. 이 땅의 모든 교사들에게 아낌없는 감사와 격려를 보낸다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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