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읍 남천마을-할머니 그리고 풍경

▲ 회관 앞 농구대도, 골목길도, 담벼락 우편함도. 할머니들의 삶 저편에선 한 때 예뻤고 고왔던 그 모든 것들이 이젠 세월의 흔적만 가득 안고 있다. 농촌마을의 활기였을 그 모든 것들이 기울어가지만 할머니들은 친구인 운동기구가 새로 생겼다며 함박웃음꽃이다.

젊은이들 있었을 땐 농구대가 최고 인기였어
이젠 회관 앞에 우리친구인 운동기구 생겼제

모두 오래됐다. 회관 앞 농구대도, 골목길도, 담벼락 우편함도. 할머니들의 삶 저편에선 한 때 예뻤고 고왔던 그 모든 것들이 이젠 세월의 흔적만 가득 안고 있다. 농촌의 쇠락만큼 한 때 농촌마을의 활기였을 그 모든 것들이 이젠 기울어간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초저녁, 해남읍 남천리 주민들의 귀가시간이다. 마을회관에서 하루 종일 함께 보냈던 주민들이 하나둘 귀가를 위해 회관 밖으로 나온다. 회관 안에서 하루 종일 이야기를 나누고도 할 이야기가 또 남았을까, 회관 앞에서 또 이야기꽃을 피운다.
화두는 마을 공터에 마련된 운동기구다. 젊은이들이 있었을 땐 회관 앞은 농구대 등이 설치돼 있을 만큼 활기찬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젠 망가진 농구대만 활기찬 옛날을 말해줄 뿐이다. 그런데 회관 앞에 최근 노인들을 위한 운동기구가 설치됐다. 아직 개봉되지 않은 운동기구들, 모처럼 마을에 활기를 몰고 왔다. 보고만 있어도 설레는지 모두들 웃음꽃이다.


“얼렁 비닐을 뜯어야 운동을 할 것인디.” 한 할머니 말에, 옆에 있던 할머니가 “아직 시멘트도 안말랐구만, 날씨 풀리면 운동 해야지, 지금 무리하다간 까딱 몸 상해”라며 핀잔을 준다.
그 할머니는 핀잔에도 아랑곳 않고 비닐 사이사이로 보이는 사용법을 힘겹게 확인해가며 운동기구에 올라탄다. 실전인 듯 팔다리를 움직여 보지만 칭칭 감긴 운동기구가 움직일 리 없다. 모두들 그 모습이 우스운 지 또 한바탕 웃음이다. 모두들 보기만 해도 마냥 기분이 좋은 듯하다.

 

반면 운동기구 뒤로는 농구대가 처량하게 서있다. 녹이 탱탱 쓸어 어디에도 쓸 곳 없는 골칫덩이다. “애들이 참 좋아했는데, 저 놈도 사용 안 한 지 벌써 20년이 넘었네. 젊은 사람이 있어야지 원.”
이래저래 기분이 좋으면서도 점점 줄어드는 젊은 세대가 한편으론 아쉬운 모양이다.

 

요즘 남천마을 화제거리는 귀향을 준비하는 이 씨 할머니의 기와집이다. 마을 중앙에 웅장에게 자리 잡았던 위풍당당 한옥은 이 마을 할머니들과 함께 나이를 먹으며 세월을 버텨냈다. “옛날부터 엄청 부자였어. 20년 동안 집을 비웠는데 아직도 멀쩡하게 남아 있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하여간 지을 때도 엄청 튼튼하게 지었나 봐.” 할머니들의 말처럼 옛 위용을 자랑했을 이 한옥이 요즘 보수공사 중이다.
20년 전 서울로 이사해 자식들 시집장가 다 보내고 홀로 귀향한 이 씨 할머니가 다시 돌아와 집을 수리하고 있는 것이다.
한옥 뒤로 보이는 커다란 소나무와 넓디넓은 마당, 그리고 마을 전체가 들어오는 풍경까지 모든 것이 웅장한 한옥 보수는 이 마을 할머니들에겐 이야기 거리다. 회관 앞 운동기구와 함께 한옥보수는 요즘 남천마을에서 가장 큰 뉴스거리며 설렘이다.  


그러면서도 할머니들은 이 씨 할머니 혼자서 아파트도 아닌 한옥을 그것도 이처럼 커다란 한옥을 혼자서 관리하는 것도 힘들 것이라며 걱정한다.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수다는 마을 안으로 차량이 하나둘 들어오면서 끝이 났다. 퇴근한 남편, 하교한 손주, 땅끝 보듬자리 식구들 등 각자 저녁준비를 위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우리 마을은 지대가 높아서 밤 풍경이 정말 볼만해.”
한 할머니의 말씀대로 어둠이 깊숙이 깔리자 저만치 불빛들이 하나둘 선명해진다. 도로를 지나는 자동차의 경쾌한 불빛과 멀리 군부대에서 울려 퍼지는 군악소리, 해남읍을 밝히는 조명들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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