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무형유산을 찾는 대장정     임현빈(제33회 남원 춘향제 전국명창대회 대통령상)

▲ 황산면 남리 출신인 임현빈 명창은 소리와 고법분야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중견 소리꾼이다.

내로라 하는 명창 줄줄이 배출한 소리꾼 집안 출신
한 대목만으로도 청중 사로잡은 호소력 있는 목소리

 

해남출신 중 이난초 명창에 이어 또 한명의 명창이 탄생한다. 임현빈(41) 명창이 그 주인공이다. 황산면 남리 출신인 임현빈 명창은 이난초 명창의 조카이다. 이모인 이난초 명창이 제19회 남원 춘향제 전국명창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데 이어 조카인 임현빈 명창이 9년 뒤인 제33회 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명창의 대열에 합류했다.
임현빈 명창의 집안은 그야말로 소리꾼 집안이다.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명창 명인들을 줄줄이 배출한 집안인 데다 흥미롭게도 서편제와 동편제 분야의 거장을 모두 보유한 집안이다.
이모인 이난초 명창은 동편제 판소리 거장이고 고모할머니인 이임례 명창은 서편제인 광주시 무형문화재 제14호 판소리 강산제(보성소리) 보유자이다.
또 조카뻘인 이태백은 아쟁 명인이고 이모인 이인자 씨는 우수영부녀농요 전남 문화재, 어머니 이수자 씨는 해남 오구굿 보유자이다. 거기에 임방울 국창은 할아버지와 사촌관계이다.
그는 소리꾼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그에게 가장 영향을 준 인물은 이난초 명창이다. 현재 남원시립국악단에 함께 몸담고 있으면서 돈독한 사제지간을 유지하고 있다.

황산면 남리 출신

임현빈 명창은 황산면 남리 출신으로 황산초등학교와 황산중, 광주예고, 서울예대를 졸업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추정남 선생에게 북을 배우며 처음 북채를 잡았다.
어렸을 때 북 치는 것이 마냥 좋아 북채를 잡았고 그때까지는 소리에 관심 없었다. 또 북을 더 잘 치고 싶어 광주예고에 진학했다. 그는 북채를 잡은 지 3개월 만에 전주 고수대회에 출전해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고수로서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광주예고에 이어 서울예대에 진학한 그는 성우향 선생을 만난다. 성 선생에게 서편제 소리인 강산제를 배우며 소리에도 기량을 보이기 시작했고 대학 1학년 때 동편제 거장인 박녹주 바디인 수궁가 완창발표회를 갖기도 했다.
대학 때 서편제와 동편제 소리를 함께 배웠던 그는 서울예대 국악과를 졸업한 뒤 동아콩쿠르 판소리부문 일반부에서 금상을 차지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이때 배영배 고수에게 본격적인 북을 배우면서 소리꾼과 고수의 경계를 넘나든다. 

이난초 명창 만나 소리꾼 길

그가 소리꾼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게 된 때는 군대 제대 후이다.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함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고자 고민하면서 선택한 것이 소리꾼의 길이었다. 그때 만난 인물이 이난초 명창이다.
이난초 명창에게 동편제인 강도근 바디인 수궁가와 홍보가, 춘향가, 심청가 등을 배우며 전문 소리꾼의 길에 들어선 그는 안숙선 명창에게 적벽가를, 이태백 명창에게 남도민요 등을 배웠다. 이러한 배움 때문인지 그는 여러 제의 소리를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그는 우리의 판소리는 크게 동편제와 서편제로 나뉘지만 명창마다 각 제에 바탕을 두고 자신만의 소리를 만들어 간다며 자신도 자신만의 소리를 위해 노력을 하고 있음도 밝힌다.
임현빈 명창의 소리는 슬픈 음색을 바닥에 깔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음색과 소릿결은 얼핏 한 대목만으로도 청중에게 다가가는 호소력과 집중력이 엄청나다. 그래서 전통사회에서라면 그의 슬픈 음색은 임방울에 비견하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을 것이라는 평가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목청은 슬픈 음색을 띠고 있지만 이는 단순히 타고난 재능만은 아니다. 판소리 5바탕 내용 대부분은 한자용어로 구성돼 있다. 그 내용을 철저히 이해하고 그 상황을 그림처럼 그렸을 때 자신의 소리에 한과 울림을 실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따라서 그는 판소리 내용을 철저히 분석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한자 하나, 사자성어와 그에 얽힌 내용을 이해해야 각 대목에 맞은 소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창극 주인공 모두 꿰차

전통음악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기에 그의 소리 바탕은 탄탄하다. 원숙한 방식으로 소리를 하며 연기력도 좋아 창극과 판소리에서 주역의 자리를 꿰차고 있다. 좋은 목청과 연기력 때문에  국립창극단 재직 시절에 <산불>의 주인공 규복, <춘향>의 몽룡, <로미오와 줄리엣>의 로묘(로미오) 등을 맡아 안정된 소리와 연기를 보여줬다.
또 정확한 발음과 노래, 대사, 극적인 요소 등을 가미해 극을 완벽하게 소화시킨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2010년 지역 판소리 및 창극 발전에 뜻을 품고 남원시립국악단 수석단원으로 자리를 옮긴다.
현재 남원시립국악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소리면 소리, 고법이면 고법 등 못하는 게 없는 소리꾼이자 우리 시대에 가장 주목받은 중견 명창이다.
흔히 ‘1고수 2명창’이라고 한다. 명창이 나려면 고수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런데 임현빈 명창은 소리와 북에 모두 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법분야도 탁월

고법 명인으로도 통하는 그는 해남에서 열린 전국고수대회 명고부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판소리를 그림을 그리는 것에 비유한다. 관객을 몰입시키기 위해 작가의 혼을 그림에 넣듯 그도 소리에 길이와 넓이, 높낮이 등을 넣으며 관객을 몰입시킨다. 한마디로 그에게 있어 소리는 희로애락을 담은 한 폭의 그림이요, 삶의 전부인 것이다.
판소리는 창자가 고음과 저음의 음역을 자유자재로 왕래하며 내면의 감정을 표현하는 소리이다. 서양 음악과 달리 음역이 나뉘어 있지 않아 창자에 의해 감정과 그 속에 깃든 사상까지도 표현해야 하는 폭넓은 소리가 판소리이다. 또 창극은 일반 판소리보다 높은 음으로 무대에서 연기와 감정표현을 해야 하는 영역이다.
이 모든 영역에서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하는 임현빈 명창은 해남 출신이지만 남원을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있다.  비록 남원에서 터를 잡고 소리꾼의 삶을 살지만 그의 활동무대는 전국이다.
판소리와 고법, 창극, 민요 등 다양한 재능 때문에 그를 부르는 곳은 너무도 많고 넓다.

남원을 제2의 고향 삼아

그가 서울이 아닌 남원을 고집한 이유가 있다. 인간사 모든 것을 경쟁으로 바라보는 서울의 분위기가 싫었고 소리만 실컷 하고 싶다는 욕망이 컸다. 또 이모이면서도 동편제 거장인 이난초 명창에게 공부하고 싶은 욕심도 한몫했다.
그는 고유한 우리 판의 문화가 사라지고 판소리도 무대형으로 정형화돼 가고 있는 점이 안타깝다고 말한다. 진정으로 우리 소리를 즐기는 놀이판이 많았으면 한다는 그는 고향 해남에 대한 애정도 크다. 해남은 소리의 고장이자 고법의 고장인데 대부분 명창과 명고수들이 고향을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쉽다는 것이다.
특히 해남은 고법분야 인간문화재가 4명이나 배출할 만큼 고법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는데 정작 고향에서는 이러한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단다.
고향 해남에서 전국에 흩어져 활동하고 있는 명창과 명고수를 초청해 그의 소리와 고법을 듣는 시간이 많았으면 한다는 그는 자신의 소리와 고법도 고향 해남의 정체성의 발현이라고 말한다.
한때 개그맨이 꿈이었다는 그는 이제 우리의 소리판에서 이 시대의 진정한 광대로 거듭나기 위한 꿈을 펼치고 싶어 한다.
인생 자체가 진행형이듯 그에 있어 소리꾼의 길도 진행형이다.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나을 수 있다는 희망, 그래야 내일 챙길 몫을 비우고 오늘 매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애순, 성우향, 이난초 명창에게서 소리를 배웠고, 고법은 추정남, 배영배 명인으로부터 사사했다.
1993년 제1회 남원흥부제 판소리대회 대상(장관상), 1995년 제11회 동아국악콩쿠르 판소리 일반부 금상, 1999년 전국고수대회 명고부 대상(국무총리상), 2011년 제38회 춘향국악대전 판소리 명창 부문 대통령상 등 수상경력이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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