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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문예르네상스 수묵화 길을 걷다 ⑥남종화 화가들을 지원했던 해남사람들 배고파도 그림은 샀던 풍류남도…남종화는 여관에서 꽃피웠다
박영자 기자  |  hpakh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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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29  10: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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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화가들 여관에서 숙식하며 그림 판매
해남유지들, 그림 구매는 하나의 문화이자 풍류

 

   
▲ 해남종합병원의 설립자이기도 한 행촌 김재현은 지역작가들을 지원하는 차원에서 그림을 구매했다. 행촌이 소장한 200여점의 남도작가들의 작품은 행촌문화재단과 행촌미술관 건립의 토대가 됐다.

 1990년대까지 해남에서 만날 수 있는 그림들은 대부분 남종화 풍이었다. 당시는 다방에서 주로 미술전시회가 열렸는데 서양화풍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으레 그림 하면 남종화풍의 한국화였고 이러한 인연으로 해남에 걸린 작품 대부분이 남종화 풍의 그림이었다. 
물론 그림에 채색을 넣은 숙당의 그림도 많이 걸렸다. 
해남 화풍은 크게 소치 허련에서 이어지는 의재 허백련 계와 남농 허건의 남종화 맥으로 형성된다. 여기에 이당 김은호로부터 시작하는 북종화 풍의 채색그림도 현당 김한영과 숙당에 의해 해남에 또 하나의 맥을 형성한다. 그러나 두 종류의 그림 모두 한국 수묵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모두가 남종화를 그렸던 시절

당시 화가의 삶은 배고픔이었다. 특히 농촌에서의 화가의 삶은 더 어려웠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1970년대에 이르면 경제성장에 따른 미술 수요층이 증가한다. 특히 이 시기 한국학의 부흥과 민족주의 정책에 힘입어 한국화가 각광을 받게 된다. 남도도 1970년대에 이르러 문화에 대한 관심과 미술의 대중화 바람이 불고 그림을 소장하는 중상류층이 늘게 된다.      
이때 남도 화가들의 작업 장소는 여관이었다. 화가들은 남도의 여관을 전전하며 그림을 그렸고 사람들은 여관으로 찾아가 그림을 구매했다. 또 화가들은 숙식을 제공받은 대신 그림으로 그 값을 대신했다. 이러한 여관문화는 1990년대 초까지 이어진다. 이때 활동한 화가들은 남종화가 한국화의 맥이라 여겼기에 모두 남종화 풍의 그림을 그렸다. 
화가들이 여관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이 시기는 남종화의 2세대인 의재 허백련과 남농 허건이 각각 광주와 목포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던 때이다. 또 그로부터 그림을 사사한 3세대 화가들이 해남을 비롯한 남도에서 활동했고 이당 김은호 제자인 현당 김한영과 숙당 배정례도 해남에서 거주하며 활동했다.  

여관에서 꽃핀 남종화

특히 해남은 물산이 풍부하고 풍경이 아름다운 데다 미술수요도 많아 숱한 화가들이 거쳐 가거나 거주했다. 이 시기 남종화 풍의 그림을 주로 구매했던 인사들은 해방 후에 형성된 해남의 제1세대 유지들이었다. 이중 병원을 운영하던 원장들과 여관과 식당을 운영했던 인사들, 결의친목계 회원들이 그림 구매를 적극 했다.   
해남읍에 제중병원을 설립해 운영하던 행촌 김재현 선생의 구매가 두드러졌다. 해남종합병원의 설립자이기도 한 행촌 김재현은 지역작가들을 지원하는 차원에서 그림을 구매했고 이름 없는 무명작가의 연하장까지도 액자에 넣거나 화첩에 차곡차곡 보관했다. 행촌이 소장한 200여 점의 남도작가들의 작품은 아들 김동국 해남종합병원 원장에 이르러 행촌문화재단과 행촌미술관 건립의 토대가 됐다. 이로 인해 행촌미술관은 70~80년대 해남에서 활동하거나 거쳐 간 남도화가들의 작품들이 모인 특화된 미술관으로 자리 잡게 됐다. 
김철수 화가도 1978년 고향 해남으로 내려오게 되는데 80년대 미술계에 몸담는 화가들이 그랬듯 그도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여관에 투숙하며 작품 활동을 했다. 이때 행촌 김재현 선생이 한걸음에 달려와 그에게 물질적 정신적 도움을 줬다. 김철수 화가는 넉넉하지 못한 화가들의 경우 누군가 작품을 이해해 주고 가까이서 교감해주는 것만도 힘이 되던 시절이었다고 회고했다.
김 작가는 행촌 김재현의 도움으로 해남읍내에 ‘농전화실’ 간판을 걸고 후배 양성에 들어갔고 군단위에서 실현키 어려운 미술협회도 창립했다.
행촌미술관에는 농천 김철수 화가의 작품뿐 아니라 남곡 정동복, 숙당 배정례 등 해남에서 활동하거나 거쳐 간 화가들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행촌미술관은 남종화 미술관
 
성모병원을 운영하던 박주선 원장과 신광병원 민충기 원장도 많은 작품을 구매하며 작가들을 지원했다. 특히 박주선 원장은 동백장학회를 설립해 후학양성에도 열심이었다.
당시 여관은 숙식을 동시에 해결하던 장소였다. 떠돌이 남도화가들을 가장 후원했던 곳도 여관이었고 그림이 유통됐던 곳도 여관이었다. 화가들은 이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그림을 팔았다. 또 돈이 없어 숙박료를 그림으로 대신했고 여관주인은 그림을 사줄 지역인사들을 여관으로 적극 불러들였다. 
당시 대표적인 여관은 천변교 아래편에 있던 강남여관이었다. 주인은 조 번, 해남에 들렀던 모든 연예인들과 예술인들 대부분은 이곳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오기빈이 운영했던 금강여관도 화가들이 즐겨 찾았다. 백포 곽남배와 그의 동생 야전 곽권옥, 참새그림을 잘 그렸던 남파도 이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그림을 그려 팔았다. 
지금의 김영희 동태찜 자리에 위치했던 동광여관은 현당 김한영이 주로 묵었고 맞은편에 있던 대도여관도 화가들이 주로 찾았는데 주인은 김영옥이었다. 
그림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대흥사 밑 유선여관이다. 당시 유선여관은 해남 문화의 중심지이자 문화인사들의 교류의 장이었다. 소리꾼과 화가 누구나 거쳐 갔던 유선여관은 많은 비가 내린 어느 날 창고가 허물어지면서 그 많던 그림들도 소실됐다고 한다. 
당시 유명한 인사들만이 갈 수 있었던 천일관도 많은 그림을 구매했다. 주인인 김천수는 그림 구매뿐 아니라 남도 화가들에게 숱한 식사를 제공하며 격려했다. 
토건업을 했던 김기선과 광주고속터미널 소장이었던 김기옥도 구매를 많이 했고 녹수식당 박영호와 방앗간을 운영했던 신철록, 대한노인회 해남지회 김광호 회장도 적극 구매층이었다.   
   
결의친목계 회원들도 한몫

해방 후인 1945년 10월15일 해남읍내 청년들로 결의친목계가 조직된다. 이들은 홍교 옆 적산가옥에 청년회관을 건립하고 전국 군단위 최초로 극단 미암을 창단해 해남에 연극을 선보인다. 
또 해남극장을 건립한 것도 이들이었다. 해방 후 해남의 문화를 선도했던 이들은 그림 구매에도 열심이었다. 금강여관을 운영했던 오기빈을 비롯해 초대 해남문화원장인 노우춘과 백일만, 손부만, 국회의원을 지낸 홍광표도 주요 구매자였다. 
당시 화가들은 여관에서 일주일 이상 묵었다. 또 해남 사람들은 유독 남종화 풍의 그림을 좋아했다. 어느 화가가 모 여관에서 그림을 그린다더라 소식을 들으면 너도나도 여관을 찾아 그림을 샀다. 
그림을 산다는 것은 투자라는 의미보다는 그림이 좋아서, 지역의 무명작가를 지원한다는 차원이 컸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해남의 식당과 여관, 다방, 사무실 등에 남종화 풍의 그림이 걸리며 남도의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지역에 그림을 전시할 공간도 없었던 시절이라 그림 전시회 장소는 다방이었다. 공식 전시회가 없던 때라도 다방은 그야말로 일상의 미술관이었다.
농전 김철수 씨는 당시 그림을 구매했던 지역 인사들은 풍류를 알았던 이들이라고 말했다. 투자의 의미에서 그림을 구매했던 것이 아니라 화가를 지원한다는 의미에서 그림을 샀고 
또 여관에 찾아가 화가를 만나고 그림을 사는 것이 남도의 풍류였단다. 
따라서 해남을 찾은 화가가 어느 다방에 묵고 있다는 소문은 빨리 퍼졌고 그림을 사든 사지 않던 그 여관을 들러보는 것도 하나의 문화였다. 
대체로 그림을 많이 구매한 층은 유지들이었지만 일반인들도 한두 점 정도는 구매할 정도로 여유와 풍류가 있었던 때이고 이러한 남도의 인심과 문화가 남종화의 풍미를 일으켰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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