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문예르네상스 수묵화 길을 걷다 ⑧전남국제수묵화 비엔날레와 해남

호남 남종화 뿌리 녹우당…전남국제 수묵비엔날레 제외 아쉽다

 

 

소치의 진도 운림산방, 남농이 활동한 목포만 포함돼
남도 남종화 공재 윤두서~소치 허련으로 이어졌는데 

 

 

전남도가 마련한 전남 국제 수묵 프레비엔날레가 목포와 진도에서 열리고 있다. 올해는 전시회 전초전, 내년부터 본 비엔날레가 개막된다.
그런데 아쉽게도 전남국제 수묵 비엔날레는 소치 허련의 활동공간이었던 진도 운림산방과 그의 손자 남농 허건의 활동지인 목포가 중심이다. 정작 호남 남종화의 뿌리인 공재의 활동공간이었던 녹우당은 제외됐다.  
남종화는 양반사대부들의 그림을 일컫는다. 자연을 사실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사대부들의 이상세계를 사의적으로 표현한 수묵작품이다. 
중국은 역대 숱한 이민족의 침입을 받아왔다. 이에 좌절한 문인사대부들은 현실정치를 떠나 자연 속에 은둔하며 좌절된 꿈과 이상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이때 문인사대부들은 세상의 혼란에 저항하기보단 자신의 수양과 도덕적 절제로 그 시대를 이겨내려 했고 그 대표적인 표현양식이 남종화였다. 
중국에서 풍미한 남종화는 조선중기 조선에 소개됐고 중후기 공재에 의해 실험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공재는 중국에서 들어온 화보집을 통해 남종화의 시대적 의미와 미술사적 가치를 알고 있었고 실험적 차원에서 이를 수용한다.
 
공재의 실험정신, 남종화 수용

▲ 공재는 남종화뿐 아니라 풍속화와 서양식 정물화인 채과도, 사실주의 작품인 백마도 등 조선후기 화풍의 선구자였다. (공재의 채과도)

공재가 살았던 시절, 학문에선 실학이 발달했다. 또 녹우당의 해남윤씨 가는 고산으로부터 시작된 박학다식의 학풍, 실용적인 학문이 가풍으로 자리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 가문의 영향으로 공재의 그림에는 실학과 박학다식이 그대로 표출된다. 동국여지도와 일본 여지도를 그리고 사실주의 작품인 말 그림, 풍속화 등 다양한 장르의 그림은 모두 그가 추구한 실학사상과 시대정신의 반영이었다. 따라서 그가 수용한 남종화는 중국의 것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실험적 차원에서 도입한 그림이었다.
특히 실학이 성리학의 비판 위에서 탄생한 학문이라면 공재가 시도한 진경산수화와 동국진체는 중국 것이 아닌 우리 것을 찾고자 하는 미술사조였다. 또 풍속화의 시도는 신선과 양반 중심의 그림에 민초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혁신이었고 그가 남긴 말 그림과 자화상은 관념적인 그림이 아닌 사실주의 화풍의 시도였다. 

추사, 중국 남종화풍 추구

공재에 의해 적극 수용된 남종화는 추사 김정희에 이르러 조선말기 풍미하게 된다. 그런데 아쉽게도 공재에 의해 시도된 혁신적 미술사조인 풍속화와 진경산수화 등은 자취를 감춘다. 따라서 추사 김정희에 의해 조선의 미술은 남종화만이 인정되는 극도의 편식주의 시대를 맞게 된다. 
추사는 중국의 황공망과 예찬의 글씨와 화풍을 추앙했다. 또 추사는 선비의 이상과 의지를 반영한 사의적 화풍 외의 것엔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관념적인 성리학과 예만을 중시한 주자학에 지친 조선에 다시 사의적이고 이상적인 세계를 추구하는 남종문인화 풍이 풍미하게 된 것이다. 추사의 회화 경향에 대해 사대적이라 비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경향을 가진 추사는 그가 가장 아꼈던 제자 소치 허련의 호를 그가 오매불망 사모했던 중국 원나라 남종화가인 황공망의 호인 대치에서 따서 지어줬다. 작은 나라의 작은 황공망이라는 의미에서 소치라 지은 것이다. 
소치의 자는 마힐(摩詰) 또 다른 이름은 허유(許維)이다. 소치는 중국 당나라 남종화와 수묵 산수화의 효시인 왕유(王維)의 이름을 따서 ‘허유(許維)’라 개명하고 자인 마힐도 왕유의 자를 그대로 따랐다. 

추사, 남종화의 편식시대 주도

▲공재의 선차도

공재는 중국에서 일어난 남종문인화를 적극 수용했지만 남종문인화는 그의 그림세계에선 일부였다. 
그러나 추사는 남종화만이 전부였고 그것도 철저히 중국 사대부들이 추구한 남종화 경향을 고집했다. 추사의 그러한 화풍을 비판 없이 받아들인 이가 소치 허련이다. 녹우당의 공재 윤두서가 시대를 극복하고자 하는 실험적인 화풍을 남겼다면 추사로부터 그림을 배운 소치는 추사가 추구한 남종화 풍의 그림만을 그리고 남겼다. 
소치 허련이 남종화 그림을 처음 대한 것은 녹우당에 남겨진 공재의 그림이었다. 그러나 공재와 소치가 추구한 화풍의 세계는 달랐다. 
추사로부터 조선 최고의 남종화가로 칭송받았던 소치는 추사 사후 진도 운림산방에 기거하며 남도에 남종화를 전파시킨다. 그리고 그의 손자인 남농 허건은 목포를 중심으로, 방계인 의재 허백련은 광주를 중심으로 남종화를 호남화단의 뿌리로 정착시킨다. 그러나 이들 대에 이르러 남종화는 남도의 풍경과 개인의 독자적 화풍이 가미되는 등 남도의 개성적 화풍으로 토착화된다. 

녹우당은 남도 수묵화 뿌리

전남도가 기획한 전남 국제 수묵 비엔날레의 출발과 중심은 소치이다. 따라서 소치가 기거한 진도 운림산방과 남농 허건이 활동한 목포가 중심지이다. 그러나 여기에 공재의 작품세계와 녹우당이 들어가야 한다는 의견이 높다. 
공재가 포함돼야만 남도 화단의 특징이 된 남종화의 수용과정이 사대성이 아닌 실험적으로 도입됐고 이러한 공재의 실험적 정신이 호남화단의 화풍으로 수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전남도가 추구하는 수묵비엔날레도 동서양을 포괄하면서도 미래지향적인 실험적 화풍으로의 발전이다. 그런데 공재가 빠졌을 때 호남의 남종화의 시작은 추사로부터 시작한 조선의 남종화, 중국 남종화를 추앙한 정신만이 남을 수 있다는 비판인 것이다.
조선의 회화사는 중국의 화풍을 도입했지만 나름대로 우리 것을 찾으려 했던 회화사이기도 하다. 당연히 남종화도 중국화풍을 수용한 것이지만 수용과정에서 남도의 실험적 정신이 담겨져야 하고 그 출발점은 공재라는 것이다. 

해남 곳곳서 열린 수묵화전

▲공재의 백마도

내년에 열리는 전남국제 수묵 비엔날레에 맞춰 행촌문화재단은 올해 풍류남도 아트 프로젝트를 수묵남도 전시로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 26일부터 오는 31일까지 열리는 수묵남도 전시는 행촌미술관과 미황사 자하루미술관, 백련사, 해남공룡박물관, 해창주조장 등에서 열리고 있다. 수묵남도 전시회는 전국의 중견 작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와 함께 행촌미술재단은 내년에 호남 남종화의 뿌리인 녹우당 충헌각에서 수묵 자화상 전을 계획하고 있다.
 호남 남종화의 뿌리인 공재를 특화시키고 그가 남긴 자화상을 통해 수묵화의 지평을 열기 위해서다. 또 해남우리신문과 함께 제3회 100인 군민초대전을 각 가정에 보관된 남종화 1점을 가져와 전시하는 풍류 해남 수묵화전도 계획하고 있다. 
해남의 식당과 관공서, 개인사무실 등은 그야말로 수묵전시회장이다. 남종화는 각 가정에서도 한 점 정도 소장하고 있을 만큼 남도의 특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내년 국제수묵비엔날레가 열리는 기간, 해남의 한정식과 남종화를 동시에 만날 수 있는 곳, 남종화 풍 그림이 주로 걸린 곳을 아트여행코스로 특화할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비록 전남 국제수묵비엔날레에 해남 녹우당이 제외됐지만 공재의 정신과 남도의 풍류로 자리한 남종화 풍의 그림을 스스로 살리고 이를 해남의 문화로 정착시킬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국제 수묵 프레비엔날레 개막

한편 ‘2017 전남 국제 수묵 프레비엔날레’가 지난 13일 목포문화예술회관에서 개막됐다. 한 달간의 대장정에 들어간 수묵 프레비엔날레는 한국 수묵화의 전통을 가장 잘 지켜온 전남의 특성을 문화콘텐츠로 키우기 위해 전남도가 기획한 사업이다. 
국제행사인 만큼 현재 열리고 있는 수묵 프레비엔날레에 참여한 작가들은 11개 나라 232명으로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국제 수묵 행사다. 
전시회는 11월12일까지 목포문화예술회관, 목포 노적봉예술공원 미술관, 진도 남도전통미술관 등 목포와 진도에서 총 24개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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