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도서관, 어르신에게 듣는다 <황연명 어르신 편>

3일 경찰서장 김행해

 

 호가호위(狐假虎威), 호랑이 없는 산골짜기에 여우가 호랑이 행세를 했다는 사자성어에 걸맞은 일이 6·25 이후 해남에서 일어났다. 
6·25가 발발하자 해남의 모든 관공서를 비롯해 마지막 보루여야 했던 경찰서마저 비게 된다. 
이러한 때 자신이 경찰서장이라고 나선 이가 있었다. 일본도를 휘저으며 해남읍내를 설치고 다녔던 인물, 돈키호테의 등장이었다,
이름은 김행해, 그는 성량 간의 성량장이였다. 김행해는 지금의 천변교 아래쪽인 한우장터에 자리한 대장간의 대장장이로 일을 했던 인물이다. 대장간 앞에는 인민위원회 사무실이 있었고 사무실에는 인민공화국 만세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여기서 영감을 얻었는지 김행해는 경찰서장을 자처하고 사회주의 구호를 외치며 시내를 활보했다.
비쩍 마른 체구에 언제나 땀에 젖은 누더기 같은 옷을 걸치고 다녔던 그가 경찰서장 행세를 한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다들 헛웃음을 쳤지만 일본도까지 꿰차고 여덟팔자걸음으로 시가지를 활보하는 그에게 시비를 거는 사람은 없었다. 
그가 경찰서장으로 행세한 지 3일째 되던 날, 나주경찰부대가 해남에 들이닥쳤다.
나주경찰부대는 전남경찰의 마지노선이었던 영광 법성포 칠갑산 전투에서 패배한 후 부산으로 후퇴하던 길이었다. 인민군에 대한 복수심만 불타있던 나주경찰부대 패잔병들, 그들은 해남읍이 인민군의 손에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포위작전을 펴가며 해남읍에 입성한다. 손가락질 하나만으로 사람이 죽어나가던 시절, 나주경찰부대에게 김행해도 용서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나주경찰부대는 김행해를 잡겠다며 읍내를 샅샅이 뒤졌다.
 

 대장간의 대장장이에 불과했던 인물이 거물이 된 순간이었다. 
해남읍 용정마을, 이 마을에 안철이라는 혈기왕성한 젊은이가 있었다. 어느 날 밤 참외 원두막에서 망을 보던 그의 눈에 사람 그림자가 스쳤다. 안철은 참외도둑임을 직감하고 미리 준비한 작대기로 후려쳐 도둑을 붙잡았다. 김행해였다. 나주경찰부대에 쫓기던 김행해는 그의 처가마을에 숨어들었고 3일째 굶었던 터라 참외서리에 나섰던 것이다. 
안철의 손에 잡힌 김행해는 마을주민들에 의해 포승줄에 묶이고 다음날 나주경찰에 넘겨진다. 나주경찰은 그를 해남군청 뒷담으로 끌고 가 총살을 했다고 한다.
김행해의 3일 경찰서장은 막을 내렸다. 그러나 후유증은 계속됐다. 나주경찰이 물러가자 인민군이 해남읍에 입성했다. 그리고 용정리에 들이닥쳐 인민재판이 시작됐다. 
김행해를 누가 검거했고 경찰에 누가 넘겼는지, 나주부대 참상에 이어 인민군의 침투로 이 마을은 쑥대밭이 됐다. 인민군 시절, 마을 사람들은 군청 뒤 담장 밑에 묻힌 김행해의 시신을 파내 꽃상여로 초상을 치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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