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에 풀이 많이 자랐다. 비가 내리고 조금만 방치하면 풀은 더 많이 자라 키가 훌쩍 커져 있곤 한다.
풀을 뽑고 있는 내게 우체부 아저씨가 약을 뿌리면 되지 않느냐고 말을 걸어온다. 휘발유 냄새의 여운처럼 그 말을 남기고 오토바이는 가버렸다. 다시 풀을 뽑으며 생각한다. 그래 약을 뿌리면 쉽겠지. 아주 쉬울지도 모르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만 약을 뿌리고 싶지는 않다. 이런 사색의 시간마저 약에게 넘겨주고 싶진 않다. 하지만 풀은 내 시간을 야금야금 잡아먹는다. 유난히 비가 많은 올해, 풀들은 제 세상이라도 만난 듯이 잘도 자란다. 그럴수록 내 시간은 자꾸만 풀들에게 빠져나간다. 지금 이러면 안 되는데, 책을 읽어야 하고 글을 써야 하는데, 마치 누군가 그래야만 될 과제를 안겨준 것처럼 풀들에게 빼앗긴 시간을 아까워한다.
질기다 싶은 풀들을 뿌리까지 뽑으며 문득 생각한다. 이래서 옛날 3대를 몰살했나? 아주 뿌리를 다 뽑아 버리기 위해서? 그렇다면 나도 이 시대에 필요 없는 존재라고 누군가가 뿌리까지 뽑아버리려고 덤빈다면, 나도 이렇게 쓸모없는 잡초라면, 그래서 누군가의 시간을 잡아먹는 악의 존재라면 아, 어떡하나. 어떡하지? 가슴이 먹먹하다. 나는 왜 그렇게 쌈닭처럼 살아왔을까? 역사란 아와 비아의 투쟁이라 했던가. 내 개인의 역사도 응징과 응징 당함의 반복이었던 것 같다. 마당에 자꾸 자라는 풀들을 뽑으며 자꾸 돌아본다. 참 넓어진 내 공간에 이것이 자유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그래 내가 뽑힘으로써 누군가는 또 이런 넓은 자유를 누릴까. 그 때가 되면 난 기꺼이 뽑혀줄 수 있을까? 허리가 아프도록 풀을 뽑으며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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