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좋아하는 철쭉 종류별로
해남읍 연동 故윤재운 고택
해남읍 연동리 이명녀(86) 할머니의 정원에는 따스함이 존재한다. 툇마루에 걸터앉아 정원을 바라보면 남편의 사랑, 자식들의 공경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연동마을 중심에 위치한 이 집은 故윤재운 어르신의 고택이다. 할머니의 남편인 故윤재운 어르신은 1872년 증조부가 지은 건물에서 대대로 살아왔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 운치가 있는 고택은 사람들의 발길을 절로 멈추게 만든다.
고택의 남다른 형태와 정원 구조가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19세기 당시 전라남도 부유층의 안채는 대부분 일자형으로 지어졌는데, 이 고택도 일자형이다. 집터가 높다 보니 윤 할아버지는 안채 앞마당에 나무를 심어 균형을 맞췄다. 집 앞의 나무들은 조망을 해치지 않도록 정전을 해서 높이를 맞췄다. 툇마루에서 한 걸음 걸어 나오면 바로 정원이다. 정원의 나무들은 서향을 바라보는 고택에 그늘을 만들어준다. 오후 내내 해를 마주 보고 있어도 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워 집안이 시원하다.
이 고택의 정원은 5년 전에 세상을 떠난 남편이 오랫동안 가꿔온 것이다. 정원 곳곳에서 아내를 생각한 남편의 따스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500평 너른 집터는 아이들이 어린 시절에 공을 차고 뛰놀던 앞마당이었고, 일꾼들이 볏짚을 쌓아 말리는 장소였다. 그 시절 남편은 전남대 농대를 나왔고, 수종을 선택하는 데도 감각이 남달랐다. 나무를 잘 알았던 그는 시기를 고려해 꽃들이 연달아 피어나도록 수종을 선택했다. 철쭉을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철쭉도 여러 종류를 심었다. 지금은 각양각색의 철쭉이 만발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마당에 심어진 나무들도 오랜 세월을 묵었다. 50년 된 향나무는 고고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고 감나무, 매화, 보리수 등도 매년 열매로 수확의 기쁨을 주고 있다. 마당에는 강아지들이 뛰어놀며 재롱을 부린다.
아버지가 가족을 위해 가꿨던 정원을 아들들이 뒤를 이어 가꾸고 있다. 형제들은 어릴 적 뛰놀던 마당에 나무와 꽃을 심었다. 가족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었다.
퇴직한 셋째 아들 윤국현(59)씨는 매주 어머니를 뵈러 내려오고 있다.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가고, 남은 시간에는 마당을 가꾼다. 윤씨는 나중에 다실을 만들어 직접 찻잎을 따는 체험을 하고자 차나무도 심었다. 또 마당에서 자란 야생화들을 여기저기 자생하도록 분포했다. 목단, 꽃잔디, 튤립, 제비꽃, 수국, 국화도 가꾸며 천천히 마당을 채워가고 있다.
아들은 연세 많으신 어머니가 거동보조기를 미는데 용이하도록 마당에 데크 길도 놓았다. 아들의 섬세한 배려와 사랑이 느껴진다.
이 집이 가장 아름다운 달은 5월 중순이다. 꽃이 만발하는 시기다. 할머니는 마당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 아름다운 꽃들이 형형색색 예쁘게 피어 바라만 봐도 참 좋단다.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꽃은 철쭉인데, 오래가고 색이 예쁘기 때문이다. 마당에는 영산홍이 만발해 정원을 밝히고 있다. 처마 밑에서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풍경 소리가 운치를 더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