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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항쟁 기념일을 맞아 망월동에 왔다가 집에 들른 너를 보내놓고 엄마는 지난 세월을 되새겨본다. 학생운동, 노동운동의 연장선에서 농민운동을 택한 아빠와 함께 귀향한지 벌써 스무 해가 넘었구나.
학교 친구, 선배들과 함께 내려와서 행사를 마치고 집에 들른 네 모습에서 엄마의 치열했던 80년대를 보는 듯했다. 왜 데모를 하느냐는 질문에‘이다음에 내 아이들이 학교 다닐 때는 정말 민주주의가 꽃핀 자랑스러운 조국에서 하고 싶은 공부만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서’ 라고 대답했었지.
그러나, 아직도 민주화는 멀어 너 또한 엄마가 걸었던 길을 걷고 있구나. 유난히 부조리에 민감한 우리 둘째 딸이 선택한 길이 엄마는 뿌듯하면서도 한편으론 염려스럽다. 엄마가 결혼할 무렵, 전라북도에 귀농한 선배가 논둑에 재워놓은 딸을 뱀 때문에 잃어버렸지. 그때, 그 선배는“운동은 내 선택이었지만, 아이들에게는 또 하나의 폭력이 아닌가 싶어”하면서 눈물을 흘렸지. 엄마, 아빠가 선택한 길이 윤택함보다는 부족함이 많은 환경을 만들어준 것이 아닌가 하는 노파심도 많았다.
아직은 배울 것이 더 많은 대학 1년생 내 딸아! 어쨌든 이론과 현실을 아우를 수 있는 사람,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으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혼자서 10발자국을 가느니보다 10사람 손을 잡고 1발자국 나갈 여유를 가진 그런 사람 말이다. 멀리 남원의 대안학교로 중등과정을 선택할 때부터 사회적 출세와는 거리를 두었지. 넌 주변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 했었지. 그러다보니 교과공부보다는 내나라 내 땅을 직접 발로 밟아보고 그에 대해 토론하고 글로 남겼다지. 덕분에 정치, 경제, 사회에 대해 또래보다는 폭넓은 경험과 지식을 쌓게 되었고, 옳고 그름에 대한 시각도 분명하게 갖게 되지 않았을까.
이제, 보다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지식을 추가하게 되면 네 길이 더욱 분명해지겠지. 엄마는 네가 사회학을 공부해서 학자가 되거나, 또는 진보적인 지식을 선택해서 투사가 되거나, 어떤 길을 선택하든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낼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부탁할 것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지 가슴 따뜻한 사람이 되어 주변을 밝힐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면 좋겠다. 엄마, 아빠의 삶이 진보성향이고, 네가 선택한 학교도 우리나라 유일의 진보성향이다 보니 너무 한쪽으로 치우칠까 염려된단다.
엄마가 해남에 내려와 살아온 지 20년 되는 동안 특별히 괄목하게 내놓을 만한 성과는 없었지만, 엄마가 있음으로써 누군가 행복하고 편안했다는 말을 들을 만큼은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여기다 욕심 부리자면 엄마 딸들이 열심히 살아서 ‘그 집 딸들 잘 자랐다’는 얘길 듣고 싶구나. 이제 6월이 가면 곧 여름방학이 되겠지. 네 희망대로 참여연대에서 일을 하거나 다른 단체에서 경험을 쌓게 되겠지. 어떤 일을 하든지 너희는 아름다운 땅끝 해남의 딸들이란다. 비록 부정부패로‘창피해서 1달만 해남사람 하기 싫어’라고 말하게 만든 어른들도 있지만, 대부분 맘 고운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잖아. 너희들로 인해서 아름다운 인상이 더해지도록 열심히 노력해다오.
네가 다녀간 지 2주일도 안됐는데 마음은 2달도 넘은 것 같구나. 올 여름 알차게 보내고 재미있는 얘기 가을에 많이 나누자꾸나. 사랑한다 내 딸들!
해남우리신문
wonmok76@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