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을 위해 노트를 펼쳤다. 그리 오래 되지도 않았는데 빛바래고 쭈글쭈글 해진 봉투. 그 위에 지렁이 꿈틀대듯 여덟 글자가 쓰여 있다. 이미 개봉되어진 편지였지만 조심스레 내용물을 펼쳐보았다.
“인터뷰”라는 영화 포스터가 지면 가득 채워진 편지지, 그 위에 봉투에 쓰인 것과 같은 서체로 “석이오빠 에게” 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오고 그 아래로 빼곡히 써내려간 한통의 편지.
내용인즉 일상의 안부와 경기 잘해서 좋은 성적 내라는 얘기, 보고 싶었는데 자신은 참가를 못해 아쉬움을 표현한 내용들이었다. 그리고 내 건강도 걱정해 주었다.
이 한 통의 편지는 매년 서울뇌성마비시립복지관과 한국뇌성마비복지회가 주최하는 뇌성마비 장애인들을 위해 치러지는 “보치아” 라는 경기에 참가 차 갔을 때 혜란으로부터 받은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 공교롭게도 혜란에게서 한 통의 편지를 다시금 받았다. 하긴 오늘 받은 편지는 며칠 전 만취한 상태에서 협박반 애원반으로 받은 것이었지만 고마웠다.
요즘처럼 e-mail이나 하다못해 쪽지조차도 web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시대에 누군가에게서 보낸 이의 정성이 가득 담긴 한통의 편지를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인터넷이나 기타 매체가 없던 시절 편지는 우리네 삶의 희로애락을 전달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는가.
더구나 혜란인 나와 같은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장애가 나보다 더 심해서 글씨 쓰는 일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닌데도 정성스레 꼭꼭 눌러쓴 편지를 보내주었다.
정말 고맙다. 그리고 미안하다. 힘들게 써 보낸 편지를 읽고 답장을 할 때면 컴퓨터 앞에 앉아 손가락 몇 번 움직여 보내곤 했다. 그렇게 무성의했었는데…. 오늘 받은 편지 또한 노트 속의 빛바랜 봉투가 아니었다면 그랬을 것이다.
빛바랜 한 통의 편지는 점점 삭막해지고 황폐해져 가는 내 마음을 어릴적 소박함과 순수함으로 이끌어준 소중한 보물과도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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