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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아직 남아 있는 새벽에 일어나 할 일이 없는데도 밖으로 나갔습니다. 요즘 들어 화초 키우는 재미에 빠져 틈만 나면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시작하면 정신없이 빠져들어 자나 깨나 그 생각만 하는 습관이 도졌습니다. 우연히 화초를 키우게 된 것이 칡 때문이었습니다.
집 뒤에 남들의 정원만한 산이 있습니다. 그 산에 칡이 얼마나 많은지 지난해에는 마당까지 뻗쳐 손을 쓸 수 없어서 포클레인까지 동원되었습니다. 올 해는 미리서 싹을 잘라버리겠다고 벌렀는데 막상 숲이 우거지면서 독사가 많다는 말에 주저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벚나무와 산죽은 칡넝쿨에 덮여 질식해 가고 있었습니다.
처음 시작은 눈에 보이고, 손닿는 곳에 있는 칡넝쿨만 잘라버리기 위해 숲 가장자리에 들어섰습니다. 막상 시작하고 보니 칡은 줄기를 뻗으면서 곳곳에 뿌리를 내려 그 근원을 차단하려면 숲 속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몇 번을 그렇게 칡넝쿨을 찾아 잘라 내다보니 내 팔뚝만한 것들만 남았습니다. 칡인지 나무인지 구별하기 어렵게 그것들은 자라있었습니다. 팔뚝만한 칡의 밑동을 자르고 나무를 감은 줄기를 벗겨보니 나무에 상처가 나 있었습니다. 제 몸 뻗어가기 위해 다른 나무 죽이는 것을 보니 사람이나 나무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 또한 어머니를 시들게 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십여 차례 숲 속에 들어가 칡넝쿨을 찾아 잘라냈더니 이제 제법 숲이 볼만 합니다. 문을 열고 앉아서 바라보고 있으면 새들이 오가며 벌레 잡아먹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 산에서 자라고 있는 나뭇가지를 꺾어다 꺾꽂이를 했습니다. 아침이면 이 녀석들이 얼마나 자랐을까 궁금해서 들여다보면 훌쩍 자라지는 않았지만 푸릇푸릇 살아가기 위해 용을 쓰는 모습이 보입니다. 잠이 오지 않는 날이면 밤이라도 그냥 감각으로 느끼고 싶어 화분 옆에 앉아 있다가 모기 때문에 일어서곤 합니다.
화분이 필요해서 어머니께 집에 있는 것을 가져가도 되겠냐 했더니 이제 눈도 잘 보이지 않으니 필요한 것 있으면 다 가져가라고 하십니다. 내 나이에도 문득 문득 죽음이 떠오르면 두려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어머니는 오죽할까 몹시 울적했습니다. 오히려 건강했을 때 짐이 많으면 나중에 진짜 짐이 된다고 1년 넘게 사용하지 않은 것은 없어도 되는 것이니 다 태워버리든지 필요한 사람 있으면 줘버리라고 말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흔한 백내장이나 녹내장도 아닌 잘 알지 못하는 이유로 시력을 잃어가는 어머니의 체념어린 말을 듣고 보니 그런 말을 차마 할 수 없습니다. 어머니가 가져가라고 하는 물건이 맘에 들거나 말거나 무조건 받아듭니다. 자식에게 줬다는 생각이라도 하면 어머니 마음이 한결 편할 것 같아서입니다.
화초를 기르듯이 어머니도 나를 그렇게 한결 같은 마음으로 들여다보고 어루만지고 그랬을 겁니다. 아직은 어머니가 내 곁에서 떠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내 어머니는 오래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 모든 자식들 마음일 겁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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