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참으로 말보다 글을 더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참으로 입이 가벼운 사람인지라 생각보다 빠른 말에 무심코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것 같아 아차 하는 경우가 참으로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누군가에게 긴히 진심을 전하고 싶을 때 가장 먼저 펜을 듭니다. 생각을 하고 글로 옮기는 순간이 좀 더 길어질수록 그에게 좀 더 깊은 진심을 전할 수 있다고 믿기에 저는 말보다 글을 더 좋아합니다.
저는 저를 사랑해주었던 그에게 전해지지 않을 진심을 고백하고자 합니다. 올 해 성년식을 치른 햇병아리 같은 스무 살이 사랑에 대해서 무엇을 알 수 있겠습니까? 네, 저는 인정합니다. 저는 참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에 그리고 그 말을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너무도 어리고 가벼운 사람입니다. 어리고 가벼운 사람을 사랑해주었던 그에게 먼저 참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사랑해보다 미안해입니다.
저는 참으로 저를 사랑하는 아이입니다. 저의 가치관을 믿고 저의 처지를 믿고 저의 판단을 믿습니다. 그리고 나를 사랑해 주는 이는 나로 인해 평가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는 나에게 판단되어야 하는 사람, 평가받아야 하는 사람, 질책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고 어느샌가 그렇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제가 가장 가슴 아프게 깨달았던 한 가지는 저는 참으로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가 설사 속물적인 인간으로 비춰질지언정 저는 그에게 솔직하게 말해야 하는 것들을 그저 외면과 침묵과 비난으로 대신했습니다. 사랑하는 이에게 마치 범죄의 가해자로 몰리는 듯한 의식은 얼마나 치명적일까요? 그는 매우 아팠을 것이고 지금도 아파하고 있겠지요. 하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저를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그는 마지막까지도 제가 그에게 이별을 일방적으로 통보한 이유를 찾지 못했을 것 같단 기분이 듭니다. 그와 만난 시간동안 제가 속앓이를 했던 생각, 그가 저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다고 여겼던 생각은 아마 허상이었을까요? 지금은 사실은 내가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하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오해하고 증오라는 씨앗을 가슴 속에 뿌리고 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별 후에 저는 사랑이란 이렇게 무지(無知)한 것인가에 대해 가슴 깊이 상처를 하나 얻었습니다.
네, 스무 살이 알기에 사랑이라는 것은 무지(無知)한 것이더군요. 저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수많은 사랑이란 이름의 시행착오와 상처들에 휩싸이며 사랑은 무지(無知)한 것이라는 말만 되뇌고 스무 살 적 그를 생각할 것입니다. 시간과 태양을 붙잡으려 하지 말라는 것처럼, 사랑 또한 붙잡아 둘 수 없다는 걸 압니다.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에 관한 추억을 정리하고 또 기억하고 또 그 추억에 사로잡히는 것뿐이라는 것임을 압니다. 그의 슬픈 뒷모습도, 웃을 때 눈가의 주름도 당황했을 때 조금은 크게 눈을 뜨는 모습도 이제는 보지 못하겠지요. 이제는 저와 같은 시간을 살고 있지만 다른 공간에 있을 그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앞에서 통곡했던 순간의, 그 때 저의 비참한 모습은, 아마 그에 대한 미안함을 대신 표현하기엔 턱없이 부족했음을 인정합니다. 나를 사랑해주었던 그에게, 나의 어린 생각으로 상처받았을 그에게 미안함을 전합니다. 미안해요, 하지만 우리는 곧 행복해질 거라 믿어요. 우리의 추억이 우리를 행복한 미래로 인도해 주는 거름이 되길 저는 진심으로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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