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가 시시해지면 고무신배 안에 돌멩이 하나 얹어 물길 따라 흘려보낸 후 그 배를 따라서 신나게 가다가 이끼 낀 돌에 미끄러져 무릎이 까지거나 옷을 버리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직 고무신에 물기가 남아서 질척거리면 얼른 펌프질한 수도꼭지에 대고 발과 신을 동시에 씻을 수 있는 유일한 신발, 그것은 고무신이었다.
여자아이들의 고무신은 흰색이든 검정색이든 새끼발가락쪽에 리본 문양이 있었지만 남자아이들은 아버지 것도 형 것도 내 것도 동생 것도 옆집 아재 것도 개똥이 아재 것도 다 똑 같은 재질에 디자인이며 신발 문수만 달랐다.
그래서 자기 걸 표시하기 위해 갖가지 자기만이 알 수 있는 표시들을 해야 했다. 어떤 신발은 쇠부지깽이에 불을 달궈서 구멍을 내기도 했고, 칼로 흠집을 내서 자기 성씨를 쓰기도 했고, OX 표시를 하기도 했다.
내가 처음으로 초등학교 3학년 때 추석날 신어본 그 운동화의 촉감과 둔탁한 발자국소리와 땅바닥에 남은 선명한 발자국이 너무 신기해 자꾸만 걸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너무 좋아 혼자서 걷다보면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행여 흙이라도 묻을까봐 발꿈치를 들고 걸었던 그 기억 또한 몸서리쳐지게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지금은 추억의 고무신으로 불리는 검정고무신 아직 내 시골집 마루 밑에 아버지가 가끔 신어보시던 그 신발이 남아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으로 지그시 눈을 감고 타이어표 고무신을 그려본다.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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