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참 오랜만이다 그치. 더운 여름날 너와 함께 마지막으로 이 풍경을 내려다보던 게 벌써 일 년 전이라니 말이야. 여름이란 왠지 불쾌한 계절이야.
굳이 이유를 찾자면 찌는 듯한 더위와 끈적끈적 흘러내리는 땀. 그리고 잠들 수 없이 더운데다 끝도 없이 괴롭히는 모기가 있는 밤.
하지만 내게 여름이 좋지 않은 인상으로 남은 건 단지 그뿐 만은 아니라는 걸 넌 알거야.
뜨겁게 내리쬐던 햇살만 기억나는 지난 여름은 지독했던 더위만큼이나 신산했던 기억들로 남아있어.
지우고 지워도, 버리고 버려도 끝없이 맴도는 생각의 소용돌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그 때, 무심코 지나가다보면 있는지조차도 모를 정도로 눈에 띄지 않던 널 보았어. 그리고 그 이후 지독했던 내 여름의 유일한 쉼터는 바로 너였어.
끝없는 자기연민과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짜증을 하나 둘씩 실려 오는 바람에 내뱉던 그 때, 세상 아무 걱정도 없는 것처럼 하늘에 흘러가는 하얀 구름을 질투하며 흘러넘치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던 그 때. 세상 모든 것이 마냥 분하기만 했던 그 때의 나에게 넌 날 위로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친구였어. 하얗게 우릴 비추던 해가 저 너머로 넘어가며 붉게 물들어 가는 모습을 너와 함께 보면서 난 위로 받을 수 있었어.
해가 떠 있을 때 올라가 기어이 해가 지고 달이 차오르는 것까지 보고 나서야 마음이 개운해졌지.
팔과 다리는 온통 모기자국으로 얼룩져 있었지만 난 그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너를 찾아갔어.
넌 왜 그랬을까 싶었겠지만 난 꼭 네가 있는 그 자리에서 해가 지는 걸 봐야 위로받는 것 같았거든.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서 같은 곳만 바라보고 있는 날 너는 이해 할 수 없었겠지만 그건 나에게 일종의 의식과도 같았어. ‘난 잘 이겨내고 있다. 난 스스로 잘 위로하고 있어.’하는 자기암시처럼.
하지만 결국 난 스스로 위로하기보다 누군가 내 외로움을 알아주고 위로해주길 바랐나봐. 그렇게 난 위로해줄 또 다른 누군가를 찾아 너를 떠났고, 그 후로 널 찾지 않았어.
일 년간 널 까맣게 잊고 있다가 일주일 전 우연히 그 길을 걸어가다 널 떠올리고 편지를 써. 가장 힘들었던 시절의 나를 묵묵히 지켜봐 주었던 너에게 감사하다고 말이야.
계절의 순환처럼 인생은 조금 먼저 걸어간 이에 대한 답습의 과정인가 봐.
그 여름의 내 짐들은 이제 다시 주위의 누군가가 하나씩 하나씩 가져가고 얼마 남지 않았어. 그렇게 비우면서 삶은 더 여물어지는 모양이야. 이런 내가 괘씸하다고 생각 될지도 모르겠지만 날 다시 보면 놀랄 거야. 난 더 이상 그 때의 여린 계집애가 아니거든.
날이 선선해질 때쯤이면 내 마음도 더 단단해 지겠지? 그때 널 찾을게. 그리고 고맙다는 인사를 전할게. 안녕. 2009년 나와 함께 했던 공원벤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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