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은목서 향기 따라
옥천 만년마을 도로변
비가 내리는 날이면 옥천 만년마을 명유당의 소박한 풍경을 찾는 이들이 있다.
‘토도독 투두둑’ 파초 이파리 위로 시원하게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이파리를 따라 빗물이 흘러내린다. 이 풍경을 보기 위해 비 오는 날에 맞춰 멀리서도 발걸음을 한다.
만년리 도로변에 위치한 명유당은 아는 사람만 안다는 조그만 다실이다. 주인장이 없어도 사람들이 오가며 차를 마시도록 늘 문을 열어둬 ‘주인 없는 찻집’이라고도 불린다. 운 좋게 주인을 만나면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서로의 일상을 나눈다.
주인장 김명유(60)씨는 20년 전 이곳을 마련하면서 마당에 이 공간과 잘 어우러지는 파초를 심었다. 사람들에게 자연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명유당 문 넘어 파초나무를 바라보는 풍경이 아름답다. 이 정원에서 가장 눈길을 잡는 요소다. 옛사람들도 넓은 잎사귀와 선인의 풍취가 있는 파초를 사랑했다. 조선회화에 자주 등장한 소재로, 정선과 김홍도의 그림에서도 파초를 볼 수 있다.
명유당 정원 풍경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봄에는 마당 곳곳에 노란 수선화가 피고 여름에는 삼색제비꽃이 잔잔하게 피어 소소한 재미를 더한다.
김씨는 토담집을 수리하면서 마당의 오래된 감나무를 그대로 살렸다. 감나무 너머 옹기종기 모인 장독대들도 소박한 시골 풍경이다. 한 켠에 쌓인 장작, 빗물을 받기 위해 놓인 절구통 물받이에는 김씨의 감성이 묻어난다. 언젠가 다실을 하면 놓기 위해 마련해뒀던 석축도 정원의 입구에서 눈길을 잡는 재미난 요소다.
마당에는 수국, 철쭉, 영산홍, 비파, 허브, 장미, 꽃치자 등 다양한 나무가 있다. 300평 규모의 녹차밭도 있다. 선암사에서 온 야생녹차나무로, 김씨는 이 찻잎을 수확해 차를 만든다. 직접 만든 차는 다실을 찾는 이들과 우려내 마시고, 만든 차를 선물하기도 한다.
이 정원의 담장은 100그루의 은목서다. 가을이면 하얀 꽃이 펴서 지나는 이들의 발길을 잡는다. 그 향기가 어찌나 좋은지, 차를 멈추고 향을 맡다 가는 이들도 있다.
김씨는 명유당에서는 한국의 전통차를, 마당 입구에 위치한 티룸에서는 홍차를 맛볼 수 있도록 공간을 구분했다.
차에 입문해서 그동안 다도 활동을 해온 김씨는 출장차 갔던 유럽에서 다양한 찻잔을 수집했다. 티룸 안에는 수십여가지 찻잔이 전시돼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공간도 명유당처럼 주인이 없어도 누구나 들러서 차를 마시고 쉬었다 가는 공간이다.
김씨는 별다른 찻값을 따로 받지 않는다. 차 한 잔 보시하는 마음이다. 이런 김씨의 마음에 찾아오는 사람들도 차를 마시고 나면 마루에 찻값을 두고 가거나, 농사지은 농작물로 마음을 표현한다. 그래서 김씨는 먹을 것에 대한 걱정은 해본 적이 없다. 떨어질 만하면 사람들이 쌀, 된장, 고추장, 김치 등을 두고 가기 때문이다.
운 좋게 주인장을 만나면 찻잔마다 얽힌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150년 된 찻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즉위할 때 입었던 드레스 무늬가 그려진 찻잔 등 담겨진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준다.
이곳에서는 50여 종류 전세계의 홍차를 맛볼 수 있다. 마음에 드는 잔을 골라 홍차를 마시면 된다. 김씨가 해남의 한눈에반한쌀과 밤호박을 이용해 만든 스콘도 일품이다. 이곳에서는 홍차 원데이 클래스도 열리고 있다.
김씨는 “누구나 자연 속에서 차를 마시고 쉬었다가는 공간이다”며 “차 한 잔으로 서로 통하고 교감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일상에서 마음의 쉼을 찾고 싶다면 이곳을 찾아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셔보길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