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속도에 뒤처지는 갈등조정
②개발과 갈등의 정점, 제주도
제주도에 귀촌해 평화롭게 살던 윤씨 부부, 그들의 일상이 꼬이기 시작한 건 옆집이 들어서면서다.
2018년 2월, 집을 짓겠다고 찾아온 옆집 건축주는 윤씨의 돌담이 자신의 일부 땅을 침범했다며 다짜고짜 500만원을 요구했다. 이를 거절하자 돌담으로 길을 막으며 이번에는 1,400만원을 요구했다. 무리한 요구에 윤씨는 소송에 들어갔고 결국 돌담을 경계로 일단락됐다. 그런데 옆집 건축주는 ‘당신 집을 반지하로 만들겠다’며 보란 듯이 흙을 1.5m를 성토한 후 집을 짓기 시작했다.
이에 윤씨는 제주시청으로 달려갔고 해당 공무원은 ‘불법성토가 아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어진 수차례 민원제기, 시청주무관과 감리, 현장관계자들이 현장을 찾아 도면을 확인하고 민원내용대로 높이를 위배했다며 옹벽의 기초를 철거하도록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공사는 완료됐다.
이후에도 청렴 감찰관, 권익위 주택건축 조사과 조사관이 현장을 찾아왔지만 잘못 끼운 첫 단추를 원상으로 회복시키긴 어려웠다.
담당공무원의 현장 확인 없는 민원처리가 불러온 결과였고 결과적으로 윤씨는 제주시청으로부터 악성 민원인으로 낙인이 찍혔다. 더군다나 제주시청은 어느날 갑자기 윤씨의 집 창고신축에 문제가 있다며 문화재발굴검사를 시행해야 한다는 통보를 했다.
신축 때도 안 받았던 문화재검사를 증축 때 받아야 한다는 통보, 그것도 2주 안에 받지 않으면 증축 공사를 취소시킨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윤씨에게 보복행정으로 비쳐졌다.
윤씨는 본인 담당 공무원은 민원에 대해 처음부터 모르쇠로 일관했지만 공무원들 및 지역유지와 친분이 있는 옆집은 불법 건축도 허용했다며 행정이 중립성과 전문성이 없었을 때 그 피해는 주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고 주장했다.
제주도는 환경문제로 인한 공공갈등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최근 가장 큰 이슈는 공사 중단과 재개 등을 반복하고 있는 비자림로 확장공사다. 당초 초기 주민들의 공감도 없이 행정에서 밀어 붙인 것도 문제지만 뻔히 보이는 갈등요소를 공론화하지 않고 진행한 것이 논란이 됐다.
당초 환경영향 평가에서는 ‘나무를 더 자르고 도로를 넓히는 공사가 생물 다양성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 했지만 제주대 산학협력단의 최근 조사용역을 보면 ‘비자림로는 현 상태로 수많은 멸종위기종과 세계적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여러 종, 천연기념물이 서식하는 생물 다양성 거점’이라는 결과를 내놨다.
이로 인해 제주도는 영산강유역환경청으로부터 500만원의 과태료 부과처분 통지를 받았다.
또 244억원의 공사를 공론화 과정도 무시한 채 진행했다는 ‘불통행정’도 논란의 대상이다.
제주도는 이처럼 대규모시책사업을 끊임없이 추진하고 있는데 반해 그에 따른 갈등 대안을 찾는데는 늦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동물테마파크, 송악산 개발, 비자림 확장로, 제주 제2공항 등 개발공사와 주민들 간의 갈등은 오래전부터 진행돼 왔다.
하지만 올 5월 들어서야 ‘제주특별자치 공공갈등 예방과 해결에 관한 조례’가 제정됐다. 조례에는 제주 제2공항과 같은 사업에 갈등영향분석을 실시하고, 도지사가 갈등조정협회의 결과에 대해 이행해야 한다는 규정을 담고 있다.
또 제주시가 설립한 공사·공단 및 출자·출연기관 추진 정책, 그리고 인허가, 승인 등의 업무가 수반되는 국책사업도 포함시켜 갈등 관리 대상의 공공정책 범위와 내용을 명확히 했다. 이미 제주도는 개발사업이 포화에 이르렀고 20년 전부터 난개발이 예상돼 왔는데 이제야 ‘공공갈등’에 관한 조례를 만들어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대규모 개발사업은 수차례의 공론화와 협의를 거쳐야만 비로소 갈등의 폭을 좁힐 수 있는데 제주도는 개발 추진력에 비해 공공갈등에 대한 선제적 대응 능력이 다소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제주도는 천혜의 자연과 이국적인 풍경으로 해마다 많은 이주민들이 정착하고 있으며 관광사업의 눈부신 발전으로 대규모 사업들이 속속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급격한 발전에 비해 민원행정이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김유성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