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도시에서의 행위예술…군곡리, 살아있는 박물관 가능

통째로 발굴된 고대도시 송지면 군곡리
마한시대 생활사·문화사 스토리 풍부

 

송지면 군곡리는 우리나라 초기 철기시대를 대표하는 유적지로 고대도시가 통째로 드러난 보기 드문 예이다. 고대국가로 성장하지 못해 화려한 유물은 남기지 않았지만 고대 마한인들의 생활사와 문화사 등 스토리의 확장성이 큰 유적지이다.   
송지면 군곡리는 우리나라 초기 철기시대를 대표하는 유적지로 고대도시가 통째로 드러난 보기 드문 예이다. 고대국가로 성장하지 못해 화려한 유물은 남기지 않았지만 고대 마한인들의 생활사와 문화사 등 스토리의 확장성이 큰 유적지이다.   


유일한 소도 확인

천군이 아니면 드나들 수 없는 공간, 그런데 누군가 급히 그 신성한 공간으로 뛰어든다. 그를 잡기 위해 뒤따라온 사람, 그러나 뒤따라온 사람은 그 신성한 공간으로 차마 뛰어들지 못한다. 비록 도둑이어도 그 공간으로 도망 온 사람은 그 누구든 돌려보내지 않았다는 신성한 공간 ‘소도’.
둥둥 북이 울렸다. 북이 울리자 마을사람들 모두 소도 주변으로 몰려왔다. 그중에는 외국에서 온 상인들도 있다. 오늘은 먼 거리로 항해를 떠나는 날이다. 북을 두드리는 이는 화려한 색의 유리구슬과 청동거울로 치장한 천군이다. 
소도 안에는 신성목이 서 있고 신성목에는 방울과 북이 달려있다. 신성목 꼭대기엔 새모양의 조형물이 걸려있다. 소도 정상에 자리한 커다란 바위에는 작은 구멍이 나 있다.
한 순간, 천군의 몸에 신이 실렸을까. 갑자기 춤을 멈춘 천군은 사슴뼈에 불을 붙이더니 뼈에 생긴 줄을 보며 점을 친다. 또 바위의 작은 구멍을 보며 오늘 중국 낙랑으로 떠나는 배가 안전할 것이란 점괘를 내놓는다.

한국 고대사, 5국으로 재편

흔히 우리나라 고대사회를 고구려, 백제, 신라 중심의 삼국시대라 칭한다.
그런데 2017년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 ‘가야문화권 조사·연구 및 정비’가 포함되면서 고구려, 백제, 신라 중심의 삼국은 가야까지 포함한 사국시대로 재편된다. 
여기에 2020년 들어 마한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됐다. 기존 4국 중심에 마한을 결합한 것이다. 따라서 마한 특별법 제정은 마한사 복원을 넘어 마한을 하나의 독립적인 정치체제, 4국 중심의 한국 고대사를 5국으로 확장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현재 ‘가야문화권 조사·연구 및 정비’ 작업이 활발한 가야지역 각 지자체들은 이제 대규모 고분군이 분포된 7개 권역을 묶어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마한역사권에 포함된 영산강 유역 지자체들도 ‘역사문화권특별법’ 제정으로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를 최종 목표로 두고 있다.
그렇다면 마한역사를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가야, 대형 고분군락지 특징

가야는 마한과 달리 고대국가로 성장했기에 왕릉급 고분군과 세련된 토기 등을 남겼다. 또 가야지역 유적지는 전부 대도시 안에 분포돼 있어 관광산업으로 활용도가 높다.(아라가야 경남 함안 말이산 고분군)    
가야는 마한과 달리 고대국가로 성장했기에 왕릉급 고분군과 세련된 토기 등을 남겼다. 또 가야지역 유적지는 전부 대도시 안에 분포돼 있어 관광산업으로 활용도가 높다.(아라가야 경남 함안 말이산 고분군)    

 가야문화권의 특징은 웅장한 고분군과 철제무기, 갑옷, 다양한 고급 토기류이다. 
대가야가 위치했던 경상북도 고령은 한 곳에 700여기에 이른 대형 고분군이 웅집돼 있다. 이들 고분군 중 왕릉에 해당되는 고분에선 각종 장신구와 무기류, 토기류가 쏟아졌다. 대가야 고령박물관은 고분 집단 군락지인 지산동에 건립돼 있다.
아라가야가 위치했던 경남 함안 말이산에는 127기의 봉토가 확인됐고 여기에 1,000여기에 이른 고분이 조성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함안박물관은 말이산에 위치해 있다. 
김해 대성동에는 고인돌에서 독무덤, 돌방무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고분 304기가 집중돼 있다. 1세부터 6세기까지 고분군의 변천을 한눈에 볼 수 있으며 고분군락지 옆에 대성동박물관이 위치한다. 

소가야 경남 고성 송악동 고분군
소가야 경남 고성 송악동 고분군

 

소가야가 위치한 경상남도 고성도 송악동 고분군락지에 박물관이 위치하고 있다. 
이렇듯 가야문화권의 특징은 대형 고분 군락지로 대별된다. 왕릉급의 대형고분군이라 발굴된 유물도 웅장하고 화려하다. 특히 가야지역의 유물분포지는 모두 도시 안에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고분 군락지 주변으로 공원 및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고대국가로 성장하지 못한 마한

그러나 마한역사문화권인 해남은 이와 다르다. 왕릉급의 대형 고분 군락지도 없고 따라서 유물도 화려하지 않다. 특히 마한소국의 하나였던 신미국은 현산면 백포만과 송지면 군곡리를 중심으로 발달했기에 해남읍과도 떨어져 있다. 이유는 마한은 고대국가로 성장하지 못하고 4세기 말에 백제에 복속됐기 때문이다. 이와달리 가야는 고대국가로 성장한 후 6세기에 들어 신라에 병합된다. 따라서 가야는 고대국가로 성장했기에 왕릉급 크기의 고분 군락지와 다양한 철제무기와 장신구, 화려한 토기를 남길 수 있었고 가야인의 터전에 도시도 발전할 수 있었다. 
해남군은 마한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 제정 이후 마한 유적에 대한 대대적인 발굴과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또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 유치를 위해 뛰고 있다.
그렇다면 웅장한 고분군락지와 발달된 토기, 화려한 철제무기가 없는 해남의 마한사를 어떻게 복원하고 활용할 것인가가 과제로 남는다. 특히 해남 마한사 중심지인 송지면 군곡리와 백포만권은 해남읍과도 멀리 떨어져 있다.

군곡리, 고대도시 통째로 드러나

그러나 주목할 것은 해남의 신미국(침미다례)은 한반도가 고대국가로 성장하기 전 초기 철기시대를 대표하는 나라였다는 점이다.   
특히 군곡리는 마한시대 하나의 마을이 통 째로 발굴된 흔치 않은 경우다.
또 군곡리 정상에는 커다란 거석과 함께 제의례를 행했던 건물터, 그리고 솟대를 세웠던 구멍 흔적. 신성시되는 공간을 감싼 도랑이 확인됐다. 죄인이 도망을 오면 돌려보내지 않았다는 신성한 공간인 소도가 확인된 것이다.
신성한 공간 주변에는 마을사람들이 모여 손에 손을 잡고 집단 무, 요즘의 강강술래를 행했던 광장도 발견됐다.   
송지면 군곡리에선 신미국의 실질적인 지도자의 집터도 발굴됐다.
<삼국지> 동이전에는 마한의 54개 소국 중 큰 것은 1만여 가(家), 작은 것은 수천 가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규모가 큰 나라의 지배자는 ‘신지(臣智)’, 작은 것은 ‘읍차(邑借)’라 불렀다고 했다. 해남반도를 중심으로 발달했던 신미국은 1만여 가(家)가 되는 큰 규모의 나라였다. 따라서 송지 군곡리에 거주했던 침미다례 왕은 당시 ‘신지(臣智)’라 불렸다.
 

김해가야 대성동박물관 소장 토기류
김해가야 대성동박물관 소장 토기류

 

군곡리, 스토리 풍부 

이렇듯 송지면 군곡리는 화려한 유물은 없지만 고대 민속신앙과 유력자의 집터, 천군이 거처한 건물 등 흥미로운 부분이 참 많다. 
일본 규슈 사가현에 위치한 요시노가리 유적은 일본 속 한국이다. 해남에서 번성한 신미국과 같은 시대의 유적지인 이곳에선 일본 야요이시대(彌生時代) 문화의 특징과 한반도와의 교류를 증명하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됐다. 요시노가리 유적지는 제사를 지냈던 건물과 망루, 마을을 둘러싼 환호 시설 등 고대도시가 그대로 복원돼 있다. 화려한 유물 대신 복원된 고대도시는 그 자체가 신비롭다. 송지면 군곡리도 마을을 둘러싼 환호가 확인됐다. 따라서 송지면 군곡리 유적의 복원은 초기 철기시대 고대도시의 복원을 의미한다. 

 

대가야 경북 고령박물관 소장 토기
대가야 경북 고령박물관 소장 토기

 

파종시기인 5월과 추수철인 10월 신미국 사람들은 마을 정상인 소도 주변에서 며칠 동안이나 강강술래를 하며 군무를 즐겼고 나라에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천군이 직접 하늘에 제를 올렸다. 소도 안에 있던 건물 안에는 각종 제사 관련 그릇이 놓여 있었고 이곳에서 하늘에 제를 지내는 논의도 진행됐다.
따라서 군곡리는 살아있는 박물관 재현이 가능한 곳이다. 고대도시에서 행해지는 고대 제의식과 강강술래, 토기제조와 유리구슬 재현 등 고대 마한인들의 생활사의 재현이 가능하다. 또 죄인들에게도 해방구였던 소도는 연극과 춤 등 각종 행위예술로의 확장성이 풍부하다. 옛 고대도시에서 재현되는 마한인들의 삶, 군곡리만이 가능한 스토리이자 장점이다. 

군곡리는 살아있는 박물관 

아라가야 경남 함안박물관 소장 토기
아라가야 경남 함안박물관 소장 토기

 

해남군은 해남역사박물관을 해남읍 연동마을에 조성할 예정이다. 고산윤선도전시관에 이어 땅끝순례문학관, 공재미술관에 역사박물관까지 연동을 뮤지엄 마을로 특화시킨다는 계획이다.
이러한 계획이라면 해남 마한시대 관련 유물은 해남역사박물관에 전시되기에 송지 군곡리는 생활사, 문화사 차원의 살아있는 노천박물관으로 복원시키자는 것이다.  
마한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 제정 이후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 유치를 위한 각 지자체의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특히 마한역사 관련 연구와 복원 등에 앞서고 있는 나주와 영암군의 유치활동은 더욱 치열하다.
다만 해남군이 유리한 점은 고분 중심의 나주, 영암과 달리 마한시대 생활사 및 민속, 문화사를 통째로 품고 있는 고대도시 군곡리가 있다는 점이다. 또 엄밀히 말해 송지면 군곡리는 가장 진정성 있는 마한 유적지이다. 이와달리 나주, 영암 등의 고분 군락지는 마한 멸망 이후에 조성된 것이고 고분 자체만을 놓고 봤을 때도 가야지역의 거대 고분군락지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시물 중심의 박물관이 아닌 살아있는 박물관, 고대도시에서 행해지는 각종 행위예술, 송지면 군곡리는 살아있는 고대도시 박물관으로 복원이 가능한 곳이다.      

 

 

박영자 기자/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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