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교통 체계의 개편은 일상에 미치는 파급력이 대단히 크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대부분 관성화된 습관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행정에서 이러한 요소를 충분히 수용하지 못하면 오히려 불편이 가중되고 막대한 예산만 지출하는 결과를 낳는다. 따라서 대부분의 지자체가 노선을 조금씩 변경하거나 서비스 정책의 변화 등을 통해 교통체계를 개선한다. 제주도의 경우 무리한 대중교통 체계 개편은 교통 만족도 감소와 혈세 낭비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무리한 개편 오히려 독
제주형 중앙버스차로제
제주도 내 차량등록 대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10년 사이 2배가 급증한 것이다. 도민들의 차량 보유 증가도 있지만 관광객 증가로 렌트카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2013년 4월 제주도 차량 대수는 자가용 20만278대, 영업용 3만4,149대 등 총 23만5,614대에서 10년 후인 2023년 4월 차량대수는 자가용 30만9,332대, 영업용 27만4,980대 등 총 58만4,980대로 두배가 넘게 증가했다. 하루 평균 교통량도 2010년 8,500대 수준에서 2023년 1만3,000대까지 올랐고 이는 전국 최고 수준 증가율이다. 문제는 한정된 도로 상황이다.
특히 제주시의 경우 공항, 선착장, 학교, 행정기관, 관광지 등 인구밀집 요인이 증가하면서 교통난도 더욱 가중되고 있다. 이에 제주도에서는 교통량을 감축시키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는데, 주차장 유료화와 주차정보 시스템 구축, 대중교통 이용 지원, 셔틀버스 운행, 승용차 10부제 5부제 2부제, 승용차 공동이용 지원, 통근버스 지원, 자전거 구입 보조금 지급 등 개인 차량 이용을 감소시키고 대중교통 혹은 다인 수송 차량 이용률을 높이기 위한 정책을 실시 중이다. 이러한 정책과 더불어 신교통수단을 도입해 추진했는데 바로 ‘중앙버스차로제’다. 제주도는 제주시의 가장 혼잡한 지역을 선정, 2017년 제주형 BRT(bus rapid transit)를 선보이며 대중교통 활성화와 교통난을 해소에 박차를 가했다.
BRT 1차구간은 아라초등학교 사거리에서 제주시청 구간이다. 특이한 점은 제주도의 중앙차로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대중교통이 아닌 택시와 전세버스까지 다닐 수 있는 ‘제주형 대중교통우선차로’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제주특별자치법까지 만들어가며 대중교통의 편리성을 극대화 한 것이다. 하지만 중앙버스차로제 시행 후 4년이 지나면서 주민들이 피부로 와닿는 변화는 없었다. 오히려 중앙버스차로제는 이전만 못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평등해야 할 도로를 개인택시 사업자와 관광버스사업자에게 특혜를 준다는 시민들의 불만도 생겼고 또한 환승에 유리한 중앙차로제 변경이 무색하게 환승보다는 목적지로 바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인 관광지 특성과는 맞지 않는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제주 도민 한상철 씨는 “중앙버스차로제 시행으로 3차로 중 1개 차로가 줄었다. 대중교통 이용객이 많으면 효율성이 좋지만 자가 차량이 전혀 줄지 않았기 때문에 정체 구간이 오히려 늘었다”며 “출퇴근 시간이면 무수천 사거리와 한라대학 인근의 정체는 여전하고 육지처럼 노선이 복잡한 것도 아닌데 중앙차로제를 고집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버스 준공영제 도입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제주자치도가 버스업체에 지원하는 보조금은 매년 1,000억원을 넘기고 있다. 2016년 준공영제 이전 7개 버스업체에 109억원을 지원했다. 2017년 준공영제가 도입된 첫해 328억원으로 재정지원금이 늘었고 2018년 버스중앙차로제의 본격적인 시행과 노선 확대, 차량 확대로 913억8,600만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이어 2019년 910억6,300만원, 2020년 977억6,500만원까지 증가했고 2021년 1,000억원이 넘는 1,039억7,300원까지 증가한 것이다. 그렇다면 대중교통 이용객 수가 크게 늘었을까. 오히려 대중교통 이용객이 줄어드는 결과를 보였다. 2016년 대중교통 이용객수는 5,659만명에서 2020년 5,037만명으로 소폭 줄었다. 대중교통 이용객 수를 늘려 재정지원금 부담을 완화시키려 했던 계획은 오히려 재정을 추가 투입해야 하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대중교통 수송분담률이 여전히 14%대에 머무는 실정이다.
대중교통 인프라 구축에 대한 고민도 노선에 대한 정확한 설문조사 없이 ‘손실이 생겼으니 보전해준다’는 개념에서 출발한 무리한 정책이 이제는 걷잡을 수 없는 재정 낭비로 이어진 셈이다. 하지만 제주자치도는 오히려 중앙차로제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노선을 확대해야 한다는 발표와 함께 300억원을 추가로 투입해 BRT 2차 구간을 만든다고 발표했다. 서광로를 시작으로 동광로, 노형로 도령로를 개편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이에 막대한 반발이 생겼다. 제주도의회와 각 사회단체에서는 1단계 중앙차로제의 과오를 개선하지 않은 채 예산만 쏟아붓는 방식을 그대로 답습해 추진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에 BRT 2단계 공사에 대한 재검토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람 중심 교통행정 제시
일방로와 순환버스 도입 제시
차량 이동 중심에만 맞춰진 제주도의 교통행정을 사람과 자연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중앙차로제 도입은 철저하게 차량 이동 편의 중심이며 보행로와 자전거 도로의 축소는 물론 수십년을 지켜온 중앙분리대의 가로수가 뽑혀 나가는 결과를 가져왔다.
보행권을 침해는 단지 인도의 축소뿐만이 아닌 인도와 보행자 도로의 완충 녹지 지대가 소실되고 버스정류장의 화단도 사라졌다. 또 유턴 구간이 없어지면서 지역 상권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
시청 인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오성경 씨는 “유턴 구간이 사라지면서 손님이 크게 줄었다. 교통 흐름상 유턴이 꼭 필요한 지역이 있는데 이를 무시하고 중앙차로제를 실시하니 도로를 사이에 두고 상권이 완전히 갈렸다. 가로변 버스차로제 시절이 오히려 지역상권 매출이 균등했다”고 말했다.
차량이동을 억제하고 친환경적인 이동을 장려하기 위해 실시된 자전거 도로도 크게 퇴보하고 있다.
자전거 도로 시행 10년이 지났지만 제주도 대부분 자전거도로는 보행로 겸용으로 쓰이고 있다. 자전거만 다닐 수 있는 자전거 전용도로는 7km구간 남짓, 전체 1,343km 구간에 0.2%에 그쳐 사실상 없는 수준에 가깝다. 중앙차로제의 확대는 보행로 축소를 가져오고 자전거를 타는 시민은 더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이다. 더욱이 차량 이동에만 행정력을 집중하다보니 자전거도로 곳곳의 포트홀과 차량의 접근, 시설 노후화로에 따른 불편사항이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사람 중심의 개편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제주시는 사람 중심 교통정책인 도로 다이어트를 추진발표와 도민 포럼이 열었다. 당시 도민들은 일방로의 적극적인 도입과 순환버스 도입, 보행로 개편 등을 제시했다.
김유성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