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시인
       김상조/시인

 

엄마가 멍석에 앉아 
한 손으론 한쪽 무릎을 끌어안고
남은 한 손으론 붓을 들고선 
곧게 펼쳐진 화선지를 
가만가만 바라보고 있다 

어렸을 적부터 자주 봤던 모습이었는데
요즘 들어선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이내 종이에 
붓이 닿자 
      
검은 얼룩이 
지면 속까지 
곧장 

스며들어 가는 게
      
이상하게도  
느릿느릿하게 
보인다    

왠지 그건 
글자라기보다는  
하나의 감정을 
너무도 많고 많아  
하나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한 마음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겨울의 어느 날이었을까 
엄마는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성경책을 읽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글이 참 잘 와닿는다며 

전도서의 구절을 
소리 내 읽어주었다
 
삶이 헛되고 헛되다는 말이 
물 흐르듯 반복되었다 

그건 어쩌면 
마음
이었을까

봄날 이마로 떨어진 
물방울 하나의 부드러운 예감처럼

한층 자연스레 
넘칠 듯 굽이쳐가는
   
붓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길이 트여 강이 되는 것 같다 
       
검고 투명한 
마음이 
     
흐르고 흘러 
은하가 되는 것 같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바라보지 않고도
내 이름을 부르며 
사과 깎아줄까 말하는 
소리를 듣는다  
                                                                                       
 

 

 

 

 

 

 

*김상조 시인은 1993년 해남 출생으로 2019년 포엠포엠에 등단했다. 시집으론 <서로라는 이름은>, <학자 α>, <시 바람 느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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