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재 윤두서의 아버지 윤이후가 쓴 《지암일기》는 조선시대를 손금보듯 묘사한 일기다. 
일기에는 소중한 자료가 많다. 바다를 막아서 논밭을 만드는 간척사업의 이야기도 그 가운데 하나다. 특별히 지금의 산이면 금호도 일대인 속금도에서 이뤄진 간척사업의 전모가 자세하다. 
공사는 1694년 3월21일에 시작해서 4월28일에 끝났다. 공사에 참여한 일꾼은 하루평균 100명, 30일 동안 3,187명이 동원됐다. 일꾼을 금호도로 데려가는 데에는 나루터의 배 4척, 사선 2척, 우수영의 배 1척 등 7척이 필요했다.(1694년 3월 22일 지암일기). 
일꾼들이 30일 동안 쌓은 제방은 길이 190발(把)로 높이는 1~2길, 폭은 6~7길이었다. 
수문은 돌로 만들고 조가비를 태운 재로 네 주변을 쌓아 바닷물이 스며드는 것을 막았다. 제방 안에는 7~8섬지기 논을 만들 수 있다(1694년 4월 28일 지암일기).
일꾼들이 마실 술은 금호도의 60여 주민들에게 빚게 했다. 이를 위해 집집마다 쌀 한 말에 해당되는 벼 2말 5되를 나눠줬다. 쌀 한 말에서 술 한 동이가 나오고, 술 한동이는 보통 서른 사발이라는 설명도 있다.(1694년 3월 22일 지암일기). 
30일 동안 마신 술은 148동이다. 공사에 들어간 곡식은 벼 22섬, 쌀 3섬, 누룩 10여 동(同), 담배 1동 60줌(把), 면포 3필이다. 품삯은 나와있지 않아서 알 수 없지만 간척사업에 많은 비용이 들어간 것을 알겠다. 일기에는 간척사업을 바라보는 윤이후 자신의 생각도 나온다.(1694년 4월 28일 지암일기).
“하늘의 도움으로 공사를 끝냈다. 나도 고생이 많았다. 농사지을 땅을 넓힌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지만, 근본에 충실하며 힘껏 농사짓는 것은 본래 수치스런 일이 아니다. 또한 불의한 데서 이익을 얻기에 바쁜 사람들과 어찌 같은 차원에서 논할 수 있겠는가? 자손들이 모쪼록 내가 지금 고생한 뜻을 알아주어 나중에라도 허랑하게 버리지 않는다면 좋겠지만, 이 또한 어찌 바랄 수 있겠는가?”
미국이 나라를 세운 1776년보다 82년이나 앞서서 쓰여진 글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윤이후와 해남 윤씨들은 미국인들이 자랑하는 서부개척시대 프론티어 정신의 원조다. 속금도에서 보듯 새로 개간해 아직 토지 대장에 올라가지 않은 논밭을 가경전(可耕田)이라고 한다. 
조선에서는 가경전의 경우 개간자의 소유권을 인정하고 3년 동안 세금을 면제해 줬다. 윤이후를 비롯한 해남윤씨 가문은 이 제도를 적극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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