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청, 국가지정문화유산 승격 예고
북암 마애여래좌상 이어 세 번째 국보
정교하고 근엄한 모습의 금불상에 반발이라도 하듯 차갑지만 인간을 닮은 검은 부처님이 국가지정문화유산으로 승격된다.
국가유산청은 지난 7월3일 해남 유일의 철 불상이자 해남 여러 불상 중 가장 오래된 불상인 마산면 은적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의 국가지정문화유산 승격을 예고했다.
은적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이 예고기간을 지나 공식 국보로 승격되면 공재 윤두서 자화상과 대흥사 북암 마애여래좌상에 이어 세 번째 국보에 이름을 올린다.
본래 불상은 국가차원에서 조성하기에 왕족의 귀한 모습을 닮은 화려하고 정교한 금불상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시대 초, 지방호족들이 부흥하면서 철로 만든 불상이 등장했다. 이때는 귀족 중심의 불교가 아닌 민중 중심의 불교인 선종이 부흥할 때다.
선종은 누구나 선을 닦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사상으로 귀족 중심의 교종에 반발해 일어난 불교사상이다. 선종의 사상은 누구나 실력을 닦고 쌓으면 왕이 될 수 있다는 호족들의 정치이념과도 맞아떨어졌다.
지방호족들은 힘을 과시하기라도 하듯 차갑고 강인한 철불을 제작하는데 철불은 값도 싸고 제작시간도 짧았다.
또 이때 제작된 철불은 무인의 기개를 닮아 엄청 크고 표정도 엄격했다. 그러나 은적사 철불은 크기도 적당하고 민초의 미소를 띠고 있다.
은적사 철불은 비로자나불이다. 비로자나불은 인간과 부처가 하나듯 모든 만물은 하나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비로자나불이 취하는 손모양인 지권인(智拳印)은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라는 의미로 오른손이 왼손의 검지를 쥐고 있다.
그런데 은적사 철불은 반항이라도 하듯 왼손이 오른손의 검지를 쥐고 있다. 이러한 손 모양은 광주 증심사 철불과 구례 대전리 석조 비로자나불에서도 나타난다.
통일신라 말 선보이기 시작한 철불은 고려 초까지 이어지다 사라졌다. 따라서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철불은 73기 정도이고 이중 광주전남에는 광주 증심사와 장흥 보림사, 은적사가 유일하다.
그런데 비로자나불을 왜 은적사에 조성했을까.
불교경전 화엄경에 금강산은 바다 가운데에 떠 있는 산이라고 한다. 또 화엄경의 주존불은 비로자나불이다.
금강산 아래에 위치한 은적사의 주존불인 비로자나불은 금강산이라는 산 이름에 맞는 부처인 것이다.
한편 은적사 철조비로자나불은 신라 말 기법을 이어받은 고려 초 불상으로 무릎 부분이 결손 됐지만 신라 말 고려 초의 조형성과 예술성을 갖춘 우수한 불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