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선/해남탐조모임
                                     윤지선/해남탐조모임

 

 장마 멈춘 지난 토요일 군청 앞 노거수에 사람들이 손을 모았다. 다음날 베어질 거라는 사형선고. 소반에는 흰수국과 소박한 음식, 혼을 달래는 경건한 의식과 노래 끝에 나무에는 실이 둘러졌다. 나무에게 남은 시간처럼 짧아진 실끝을 잡은 인간띠. 나무 숟가락 깎던 사람들의 손도, 공원에서 나무 타며 놀던 아이 손도 길 건너 수성송 앞 보호수로 지정된 더 큰 느티나무로 이어졌다. 
누군가 이곳 나무들이 유난 을씨년스러웠던 518을 떠올렸다. 나무의 비명을 들은 누군가는 몸살이 나기도 했다. 오랜 세월 나무로부터 계절마다 받았던 위로와 행복이 베어지는 상실감이 전이됐던 것. 
가로수로 홀로 남아 고사 되고 잘려나간 150살 느티나무와 보호수로 자리한 500살 느티나무 그리고 전라도 천년수로 지정된 1,500살 두륜산 느티나무는 각각 떨어져 있지만 땅과 하늘로 이어져 있다. 화학물질을 내뿜어 신호를 보내고 뿌리로는 균근망을 통해 나무들의 우드와이드웹(The Wood-Wide-Web)을 형성해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다. 느티나무 밑동에도 큰 버섯이 자라고 있었다. 사람들은 나무가 죽어간다 표현하지만 큰 어른으로서 뭇생명에 자리를 내어주면서 네트워크를 형성해가는 과정이다. 
생태학에서는 가장자리효과(edge effect)라는 개념이 있다. 대흥사 숲길을 걷다 보면 귀한 대흥란이 바람길 따라 길가에 밟힐 듯 피어있다. 여기서 가장자리는 약한 주변부가 아니라 강렬한 에너지가 모이는 곳이다. 주변으로 밀려난 가장자리 끝에 생명이 창발한다. 가장자리의 왕성한 생명력은 파편화되어 사라지거나 허브로서의 중심이 될 가능성을 지닌다. 땅끝이 바로 가장자리 끝이 아닌가. 가장자리 생명력을 느끼고 있는가. 어미 나무의 신비를 지켜주고 있는가.
가장자리 생명력의 보고인 대흥사 물길에는 해마다 파란눈매와 부리, 초록혀가 환상적인 긴꼬리딱새가 둥지를 틀었으나 지난해 길정원 공사에 고생을 했는지 올해는 다른 자리로 둥지를 옮겼다. 곤충들도 1/10 수준이다. 이곳의 중요한 몇 나무도 다른 나무들과 함께 베어질 뻔하다가 다행히 잘 조정됐다. 
처음 귀촌해 해남읍을 걷던 청년 귀촌인은 직선 본능의 도로가에 곡선을 그린 이 느티나무를 보고 깜짝 놀랐다. 세계적인 광고천재 이제석의 사진 광고에서 봤던 그 장면이 군청 앞 노른자 땅에 실제하다니. 한그루 노거수에게 내어준 사람들의 마음과 행정이 그저 놀랍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어제 나무의 죽음을 보면서 나무를 기리고 그 우드와이드웹에 조응하는 해남 사람들의 마음에 다시 감동했다. 그 길에서 한낮 그늘을 드리워주던 마지막 가로수가 베어졌다. 누군가에게는 마지막 골칫거리가 사라진 것일 수도 있겠지만, 찬성 민원도 반대 민원도 나무가 위험하다고 보내는 신호, 나무의 말을 들은 것. 아무런 고지 없이 하루아침에 댕강 잘려나가기도 했을 법한 예전과 달리, 미리 공지하고 몇 달간 고민한 해남군 행정도 예전보다 성숙해가고 있는 것이리라. 공공영역 나무들의 생사여탈권은 해남군 책임만도 아니다. 
사람들과 나무는 이미 공명하고 있다. 오랫동안 늘 그렇게 살아왔다. 만일암터의 천오백살 느티나무 큰 어르신 가까이까지 임도가 나자 어미 나무의 생명력에 위협을 가할까 봐 대흥사측도 고심을 거듭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조만간 삼산면 벚나무들도 왕복 4차선 계획에 베어질 신세로 봄날의 합창이 끝날 수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이제는 이 나무들의 목소리에 섬세하게 귀 기울이며 공생의 길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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