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시작된 한국수영
그에게 수영은 애국이었다
해남읍 학동저수지는 소년의 놀이터였다. 그러나 소년은 저수지 그 너머의 세계가 궁금했다. 해남고등학교 1학년 때 소년은 무작정 집을 나와 서울로 향했다. 서울은 땅끝의 망망대해보다 더 막막한 세계였다.
무작정 찾아간 간판집에서 노동을 하며 숙식을 해결했던 소년, 수영에 대한 간절함이 컸던 소년은 1968년 11월, 서울종로 YMCA수영장을 찾았다. 이곳은 당시 대한민국에 딱 하나 있던 유일한 실내연습용 수영장이었다.
어디서 구했을까. 만료된 수영장 회원권의 날짜까지 위조해 찾아간 소년의 간절함에, 직원은 수영장 청소를 조건으로 연습을 허락했다. 아침에 수영 후 간판집에서 노동, 오후엔 수영장 청소에 이어 또 연습을 했다.
1년 만에 전국대회 재패
그리고 1969년 6월 전국체전, 학생신분이 아니었던 소년은 일반부 소속으로 출전했다. 물론 정상적인 수영복 차림도 아니었다. 그러나 소년은 남자부 자유형 400미터와 1,500미터에서 대회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무명의 소년 선수가 혜성처럼 나타나 우승을 차지하자 수영계는 경악했다. 땅끝해남을 벗어난지 1년 밖에 되지 않은 해에 대한민국의 정상에 선 것이다.
소년은 전국체전을 계기로 태릉선수촌에 입촌하고 양정고등학교에 적을 두게 됐다. 그리고 1년 후인 1970년 태국 방콕에서 열린 제6회 아시안게임, 당시만 해도 아시안게임 수영종목은 일본의 싹쓸이었다.
아시아 물개의 탄생
19세 소년은 양정고 2학년 신분으로 자유형 400미터와 1500미터에 도전했다. 먼저 열린 자유형 400미터, 그곳엔 한국 기자들은 없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금메달에 아시아 신기록까지.
뒤늦게 몰려온 기자들은 호텔 복도에서 소년에게 수영복 차림의 포즈를 취하게 한 후 사진을 찍었다.
이후 열린 1,500미터 대회, 한국 기자들도, 국민들도 숨죽이며 지켜봤다. 또 하나의 금메달 추가에 신기록까지, 아시아 물개의 탄생이었고 한국 수영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대한민국의 모든 뉴스는 소년으로 도배됐고 일본은 예기치 못한 패배에, 대한민국은 예기치 못한 승리에 잠들지 못했다. 조오련의 우승은 대한민국에 수영 열풍을 일으켰고 전국에 수영장 탄생의 신호탄을 쏴 올렸다.
태극 머리띠 메고 시상대에
그리고 4년 후인 1974년 테헤란에서 열린 제7회 아시안게임. 고려대에 적을 둔 23세 청년 조오련은 또다시 자유형 400미터와 1,500미터에서 아시아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조오련은 대한민국을 사랑했다. 이때 그는 하얀 모시옷에 고무신, 태극 머리띠를 메고 시상대에 올랐다.
그는 1978년 은퇴할 때까지 50개의 한국 기록을 갈아치우며 한국 수영의 역사를 경신하고 또 경신했다.
1980년, 대한민국은 광주 학살로 암울했다.
8‧15광복절을 4일 앞둔 1980년 8월11일, 대한해협에 그가 나타났다. 부산 태종대에서 일본 대마도까지 장장 48km 거리, 그의 기록은 13시간 16분10초. 예상했던 기록을 6시간이나 앞당겨 그는 대마도 땅을 밟았다. 시속 4km 또는 시속 7km의 속도, 인류 최초로 맨몸으로 건넌 대한해협이었다. 그의 대한해협 횡단으로 국민들은 또 그에게서 희망을 얻었다.
1982년, 조오련은 다시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있는 도버해협 38km 횡단에 성공했다.
그러나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은 세월이 흐르면서 국민들의 가슴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인간의 한계를 넘다
그런데 2005년, 일본이 독도 문제를 들고 나오자 두 아들과 함께 3부자 독도 아리랑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울릉도에서 독도까지 97km. 3부자가 릴레이로 횡단한 시간은 18시간. 횡단에 성공하자 다시 대한민국은 조오련을 주목했다.
2006년, 조오련은 귀향해 계곡면 법곡리에 터를 마련했다. 그리고 2008년, 일본이 독도문제를 또 다시 들고 나오자 3·1독립운동을 선언한 33인을 기리는 독도 33바퀴에 도전해 성공했다.
그리고 대한해협 횡단 30주년 기념으로 대한해협 재도전을 준비하던 2009년 8월4일 심장마비로 자택에서 사망했다.
2020년, 조오련은 대한민국 스포츠 영웅으로 선정됐고, 체육인 중 6번째로 국립 현충원에 안장됐다.
해남읍 학동저수지는 조오련 선수가 수영을 시작했던 곳이다. 이 같은 인연으로 학동 주민들은 이곳 저수지를 조오련 저수지라 부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