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은 큰 스승이었다. 초의에게 학문과 시문을 가르치는데 그치지 않았다. “사방을 구름처럼 노닐면서 나라 안의 이름난 산을 두루 보고 나라 안의 이름난 선비를 다 알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운유사방(雲游四方) 진관국중명산(盡觀國中名山) 진식국중명사(盡識國中名士). 초의가 스승의 뜻을 받들어 10년을 주유하면서 만난 이 가운데 추사 김정희가 있다. 1815년 겨울. 초의는 다산의 아들 정학연의 배려로 수락산의 학림암에 머물고 있었다. 이때 추사가 눈을 헤치고 찾아온다. 이 만남으로 두 사람은 평생지기가 된다. 
추사가 초의에게 보낸 편지가 있다. “(초의)스님의 편지를 받으니 글자 글자가 지혜의 구슬이 되어 방을 환하게 밝혀줍니다.” 속왕선함(續枉禪緘)자자혜주(字字慧珠) 촉조일실(燭照一室). 
초의는 추사의 마음을  비추는 등불이었음을 고백하는 글이다. 추사는 제주도로 가는 유배길에도 친구를 떠올린다. 태장을 맞아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일지암을 찾는다.
“하늘은 어찌하여 군자를 보호하지 않고 땅은 어찌하여 선비의 뜻을 길러주지 않고 이처럼 곤경에 떨어지게 하여 기회를 빼앗아 버리는가” 천하이불보군자(天何以不保君子) 지하이불육굉사( 地何以不育宏士) 여차곤횡탈기 如此困橫脫機). 추사를 맞이한 초의는 이렇게 탄식한다. 
추사가 제주에서 9년을 보내는 동안 초의는 세 번이나 친구를 찾아간다. 산방굴사에 6개월을 머물면서 날마다 추사를 위로하기도 하였다. 
초의와 추사를 돌아보면서 차의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두 사람 사이를 ‘차로 맺어진 우정’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추사가 초의에게 보낸 70여 통의 편지에는 차를 보내달라고 사정하는 걸명(乞茗), 차를 보내주어 감사하다는 사다(謝茶) 두 단어가 반복된다. 초의차(두륜차ㆍ장춘차)를 만들어 한양으로 제주도로 보내는 초의의 정성도 대단하지만, 틈만 나면 차를 재촉하는 추사의 집념도 못지 않다. 
죽로지실(竹爐之室)이나 명선(茗禪) 같은 추사의 서예작품도 차를 보내준 초의에게 주는 선물이었다고 한다. 
대둔사에 있는 대광명전(大光明殿)에도 사연이 있다. 이 전각은 추사가 하루빨리 유배에서 풀리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초의와 신헌이 지은 건물이다. 대광명전에서 친구를 위해 기도하던 초의의 마음을, 장춘계곡을 지나는 바람은 알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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