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땅끝에도 얼음이 얼었다. 밤새 분노와 공포에 떨다 살풋 눈뜨니 다행히 날이 풀렸다. 이런 날이면 봄이 온 듯 작디작은 꽃들이 피기도 한다. 비파꽃 동백꽃에도 뿔나비 네발나비가 찾아들고 동박새 직박구리가 부리 가득 꽃가루를 묻히고 힘차게 우짖는다. 남도의 봄은 작은 봄에도 민감하게 조응하며 잠들지 못하는 생명들을 먹이고 꿈꾸게 한다.
마지막 빙하기에도 어떻게든 길을 내고 살아 남아온 겨울나비처럼 작은 존재로서 나비효과의 길을 내기 위해 작년 하반기 처음 땅끝아해라는 이름으로 송지면 아이들과 엄마들이 중심이 되어 모였다. 주말마다 도시형 키즈카페와 학원을 순례하는 소비자 대신, 시설 밖 자연에 가까워지는 여러 방법들을 놀이와 예술로서 땅끝형 생태유아 돌봄공동체를 실험하는 한해였다.
가까운 웃뫼산으로 달마산으로 두륜산, 땅끝바다 모래와 바위 갯벌 조수웅덩이에서 놀면서, 계절마다 땅끝 자연의 풍부함 속에 아이들을 맡기며 생태유아로드를 모색했다. 우리동네 청년예술가와 수준별로 도자기를 구우며 흙과 친해지고, 숲해설가와 나뭇잎 배를 만들어 계곡을 탐험하고, 어린이 요가도 하고 전문 탐조장비로 새와 곤충의 눈이 되어 땅끝을 재발견했다.
아이들과 엄마들의 쉼터 공유지로 우리집 공터를 활용키로 했다. 아이들과 토종씨앗을 심으며 공동텃밭과 트리하우스를 구상했다가 아이들은 경계가 없으므로 앞뜰 뒤뜰 집 안팎을 드나들며 놀았다.
농사는 겨우 기후변화작물만 건졌지만, 낮은 울타리를 사다리놀이 삼고, 모래장에 곤충 경연장을 만들고, 나뭇가지를 연결하며 여기저기 아이들이 임시로 짓고 허무는 예술 텃밭과 생태놀이터가 생겨났다.
목수님의 도움을 받아 아이들도 직접 나무를 자르고 드릴로 못을 박아보기도 하면서 나무놀이터가 생겼고 외나무 스릴도 즐길 수도 있게 되었다. 아직 허술하지만 아이들이 그림 그리며 구상하고 엄마들과 천천히 상상하며 덧대어가는 기쁨이 있다. 인공적인 놀이터보다 나무만 보면 매달려 오르는 기쁨. 어디서든 만류하는 어른들과 달리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게 도와준 엄마들 덕분에 주렁주렁 아이들이 열리는 나무. 올해처럼 꽃이랑 장딸기 실컷 따먹고 개 고양이를 쫓기만 해도 좋지만, 내년엔 흙놀이터도 만들어보고 농사도 잘 지어 김장도 해보자 벌써부터 꿈이 가득하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있는 낮 동안에는 자연예술가 멘토들을 만나 자연직조예술 위빙을 배우고 주말에는 멀구슬나무를 타피스트리 삼아 자연을 엮었다. 목신의숲에서 아이를 키워낸 윤용신 멘토님은 이렇게 말했다. “엄마들은 경력단절자가 결코 아니라 살림이스트로서 경력보유자예요”라고. 정말 그랬다.
엄마들은 플라스틱 완제품 장난감에서 벗어나 직접 만들어보기로 했다. 처음엔 작은 테이블인형을 만들었다가, 우연이 겹쳐 우리 공동체 사업을 너머 이웃과의 연대이자 배움 삼아, 황산면 눙눙길 젊은 친구들과 마음인형을 만들고, 장흥 빠삐용zip 개관식을 앞두고 나비제작단이 되었다.
각각 2차, 6차, 8차에 걸쳐 장인급 인형엄마 엄정애 멘토님과의 워크샵을 통해 만들어진 창작물을 보며 육아 생활 속에 잊고 지냈던 예술을 깨워내고 아이들과 함께 재확인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마음인형은 이달 12월13일부터 해남읍 아트마루에서 전시 시작, 12월23일에는 옛 장흥교도소의 빠삐용zip 개관식에서 엄마들은 우리 아이들과 나비가 되어 퍼레이드에 합류한다.
어제의 첫얼음처럼 아이들은 게임인줄만 아는 살벌한 계엄과 어른들의 혐오말이 오가는 무서운 지옥문이 보일수록, 여섯번째 대멸종기에 태어나 생명을 이어나가는 이곳 아이들과 새로운 세상을 향해 해방되고 탈출하며 날마다 작은 천국 만들기에 게을리 말아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