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는 말에 격노한 헤롯왕. 권력을 유지하고자 두 살 아래 남아들을 모두 죽이라 명령을 내립니다.
크리스마스 비극은 시공간 얼굴만 바꾼 채 돈본주의 권력 파시즘을 반복하고 있다지만, 지구별 공동체는 다른 시대 다른 조건 속 더 나은 선택을 하며 새로운 생명현상으로 끊임없이 이어져 왔습니다.
새는 왜 새야? 아이가 묻습니다. 사이의 줄임말. 하늘과 땅, 이곳과 저곳, 사이를 잇는 존재라서라고 답해봅니다. 기후변화시대 가장 취약한 종이면서 가장 적극적인 적응을 해낼 가능성. 그래서 우리는 새를 봅니다. 지구별 여행자로서 가볍고 따뜻한 몸으로 지구의 생명현상을 지탱해왔기 때문입니다.
대멸종으로 공룡시대는 끝났지만 눈덩이지구 빙하기를 건너오면서 살아남은 공룡의 후예로 밝혀졌을 정도니까요.
국가라는 틀과 경계를 넘어 날아올라 새처럼 새로이 보는 시선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며, 시공간에 못박힌 인간종은 새를 추앙해왔습니다. 지금 MZ세대 신인류의 리추얼은 과학적 사실과 마술의 세계를 구별할 줄 알고 연결될 줄 아는 감각을 지녔습니다.
지금 해남엔 독수리가 날고 있습니다. 이번 달 서정초 아이들과 고천암에서 만난 스무 마리 독수리떼. 사람보다 큰 날개가 머리 위로 드리워진 경이감은 평생 소환될 것입니다. 겨울은 맹금류의 시간입니다. 작아도 매서운 때까치, 커다란 위압감에도 순한 눈을 가진 독수리는 사냥하지 않는 청소동물입니다. 최상위 포식자 맹금들조차 군림하지 않고 도륙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권역의 대표종으로서 우산처럼 큰 날개 아래 생태계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 우산종이라고도 부릅니다. 지금 어른들의 정치는 학창시절 일그러진 영웅시대에 약육강식 적자생존이라는 전제적 식민시대 우생학 잔재를 잘못 배운 후유증인지요? 학교에서 벗어나 오래 자연을 접하고 공부해보니 자연은 힘이 지배한 것이 아니라 다종다변한 공생공존의 하모니입니다.
젊은 시절 올바른 자기 질문과 다양한 연결과 공감의 경험 얼마나 중요한지. 폭력적 힘의 세계만을 학습한 저들의 상상력은 선진국으로 착각했던 대한민국을 순식간에 다른 시공간으로 바꾸어놓았습니다.
한반도 곳곳에 폭력이 휩쓸고 간 근현대사를 제대로 애도하지 못한 채 자본주의를 이룩해온 이 나라. 가장 어두울 때 가장 밝은 것을 들고 나오듯 노래와 예술은 태어납니다.
한강의 소년이 오고, 응원봉을 든 소녀가 옵니다. 농민의 트랙터와 휠체어 탄 장애인들과 차별받는 소수자들에게 달려옵니다.
유난히 깊은 어둠을 마주하게 되는 이번 십이월. 침묵을 강요받으며 묻어놨던 근현대사의 지층들이 한꺼번에 다시 되돌아나와 연말정산을 하며 내년 계획을 세우라고 합니다.
유난히 굴곡진 근현대사를 써온 해남땅은 추수봉기와 4‧6오일장 만세운동과 5‧18주먹밥 연대와 예술가들의 저항정신이 살아있는 곳입니다.
면마다 협력하여 독특하고 아름다운 해남 곳곳의 자연과 아픈 근현대사를 제대로 마주하고 깊이 공부하고 공유하는 리추얼로 전환하는 새로운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길. 그것이 해남학으로서의 로컬 콜로키움 민주주의이고 해남의 소년 소녀가 오는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