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죽어간 나를 위해서든, 또 다른 누구를 위해서든 정치적인 보복이 이 땅에서는 다시는 행해지지 않도록 부탁하고 싶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내 마지막 남은 소망이기도 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는 내 마지막 유언입니다” 전두환 신군부의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김대중의 최후진술이다(p.111). 
DJ는 대통령이 되자 자신의 최후진술을 서둘러 실천했다. 자신에게 죽음을 선고했던 전두환과 노태우를 처벌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선인 시절에 YS에게 두 사람의 사면을 건의했다. 2002년 월드컵 독일과의 4강전 때는 전직 대통령 내외분을 모두 초청해 함께 관람하기도 했다(p.145). 이는 박지원 의원의 책「지금 DJ라면」(메디치, 2023)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다.
“인사가 만사다. 동종교배는 퇴화‧도태되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고 믿었던 DJ는 탕평인사를 몸소 실천했다(p.161). 노태우 전 대통령의 정무수석을 지낸 김중권을 비서실장으로 불렀다. 노태우 정부에서 남북고위급회담 대표를 맡았던 임동원 원장을 외교안보수석으로, 민정당 원내총무로 일했던 이종찬 의원을 지금의 국가정보원장으로 임명했다. DJ는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전문가를 두루 기용함으로써 안정적인 국정운영과 국민통합을 도모했다(p.162).DJ의 언론관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은 조선일보의 방북취재를 허락할 수 없다고 통보해왔다. DJ가 나섰다. “대통령이 가는데 우리 기자들에게 취재를 못하게 하면 되느냐?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서 조선일보의 방북을 허락하도록 설득하라.” DJ의 부탁을 받은 박지원 의원은 김정일 위원장을 찾아간다. 
결국 조선일보 기자들은 다른 취재진들과 함께 휴전선을 넘을 수 있었다(p.178). 사실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독재정권과 싸우던 시절의 DJ에게 조선일보는 우군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DJ는 조선일보를 각별히 대우했다. 언론의 자유가 곧 민주주의의 토대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 DJ라면」에는 지근거리에서 DJ를 모신 박지원 의원만이 알 수 있는 비화들이 넘쳐난다. 2024년의 안개정국 속에서 길을 찾는 정치인들은 물론 바람직한 사회를 꿈꾸는 시민들도 일독할 만한 책이다. 유튜브에도 DJ와 박지원 의원에 관한 자료가 많다. ‘폴리티션스토리-인간 박지원 의원’을 찾아보시기를 권한다. 대학(大學)에 이런 말씀이 있다. 심부재언 시이불견(心不在焉 視而不見). ‘마음이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정치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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