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경험은 늘 설레고 두렵습니다. 첫 만남, 첫사랑, 첫 키스, 첫 해외여행 등등. 새로운 경험을 좋아하고 즐기는 편입니다. 낯선 곳에 가면 발품을 팔아서 이 골목, 저 골목을 샅샅이 돌아다니지요. 어떤 사람들이 무얼 먹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걸어 다니면 차로 이동할 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많이 보입니다.
때때로 마을회관에서 모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눠도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일찍 나와서 음식을 준비한 여자들은 방바닥에서, 남자들은 테이블에 앉아서 식사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치우는 것도 여자들의 몫입니다. 마음이 불편해서 설거지하려고 해도 아주머니들이 쫓아냅니다.
함께 음식을 준비하고, 치우는 게 제일 좋겠지만 조리공간이 비좁습니다. 요리에 서툰 남자들이 설거지라도 하면 좋을 텐데 쉽지 않아 보입니다. 오래전 ‘딸사랑아버지모임’에 참여했었습니다. 딸을 둔 아빠들의 모임이 아니라 각 가정에서 ‘딸과 아들을 차별하지 않고 평등하게 돌보는’ 모임이었습니다.
그때 꽤 유명한 중소기업 사장님이 말했습니다. 당신이 대구사람이라 그런지 아내와 딸들도 무뚝뚝해서 재미없다고. 그래서 하루와 주간 일정을 물었지요. 회사를 경영하느라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일한다고 했습니다. 주말에도 접대용 골프 모임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고 했지요.
그 말을 듣고 물었습니다. “혹시 설거지해 본 적이 있으세요?” 그분은 “남자가 어떻게?”하고 펄쩍 뛰었습니다. 그분에게 권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만이라도 꼭 해보세요.” 다음 달 모임에 나온 그분의 표정이 여느 때와 달리 밝아 보였습니다.
“뭐 좋은 일이 있으세요?” 설거지할까? 말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미친 척하고 했더니 소파에서 TV 보던 아내가 뛰어와서 “여보, 내가 뭐 잘못했어?”했답니다. 아내가 너무 좋아해서 틈나는 대로 설거지한다. 그러니까 소 닭 보듯 하던 딸들까지 살갑게 대한다며 고맙다고 했지요. 그래서 주말 하루는 골프 약속 대신에 가족과 보내려고 노력 중이라고 했습니다.
어린아이를 무한경쟁의 틀 속으로 등을 떠미는 게 옳은 일일까? 공부도 때가 있다고 했으니 노는 것도 때가 있지 않을까? 초등학생 때 실컷 놀지 않으면 언제 또? 딸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분당에서 제주로 이사했습니다. “왜 좋은 학군을 버리고, 시골로 가느냐?”, “그건 너희 부부의 뜻이지 아이가 원하는 삶이 아니잖아?” 말들이 많았습니다.
제주살이 8년 동안 매일같이 아침저녁으로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러면서도 ‘맏아들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조금은 염려가 됐습니다. 그래서 통화할 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요. 처음으로 아내의 손을 잡고, 첫 키스 때처럼 오랫동안 망설였습니다.
어느 날 오후. 통화를 마칠 무렵에 심호흡하고 말했습니다. “아버지, 사랑해요.” 순간 수화기 너머에서 움찔하는 게 느껴졌습니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에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술 마셨냐?” 무엇이든 처음이 힘든 법입니다. 그다음부터는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 달여가 지났을 때 아버지가 응답했습니다. “그래, 나도 사랑한다.”
또래는 물론이고, 나이 차이가 나는 남자들한테도 이 얘기를 해줍니다. 어릴 때 아버지는 크고, 힘센 존재지만 우리가 성장하면 늙고 힘 빠진 노인일 뿐이다. 아버지한테 사랑한다고 말해라. 내가 부모님께 제일 잘한 일이 그 한마디다.
변화가 쉽진 않겠지만 옆지기를 위해서 마음을 내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