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한역사문화 국제학술대회
유리구슬로 본 고대항로
9월19일 군청 대회의실
고대사회 ‘유리구슬의 대항해’가 시작됐다. 지금의 K-팝처럼 유리구슬은 고대사회를 열광케 했고 전파가 아닌 바닷길을 통해 급속히 세계를 하나로 묶어냈다.
로마에서 시작된 유리구슬의 대항해는 인도와 말레이시아, 베트남, 해남을 넘어 일본으로 이어졌다.
유리구슬을 통해 고대 해남은 중국 중심의 문화권에 묶여 있었던 것이 아니라 로마, 페르시아, 인도, 동남아시아 등 광범위한 지역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었다.
유리구슬을 통한 동서양의 교류, 그것은 상호 간 문명과 문화의 충돌이었고, 사후 융합하는 과정이었다.
유리구슬의 대장정의 길이 오는 9월19일 오후 1시30분부터 해남군청 2층 대회의실에서 열리는 마한역사문화 국제학술대회에서 펼쳐진다. 해남 여러 학술대회 중 처음으로 유리구슬을 통해 고대 국제 해상항로를 조명하고 유리구슬이 베트남과 해남, 일본으로 유통된 과정을 밝힌다.
중국 한나라 제7대 황제에 즉위한 한무제(기원전 141~기원전 87년)는 육지 실크로드에 이어 해상 실크로드 시대를 연다. 이로 인해 동서양은 바다를 통해 하나의 경제 네트워크로 구축되는데 이 바닷길을 통해 가장 활발히 유통된 것이 유리구슬이었다. 유리는 4000~5000년 전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 첫 출현했다. 이곳에서 출현한 유리제품은 로마제국의 팽창과 제국의 교역망을 통해 각지로 수출됐고 동지중해 연안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며 꽃을 피웠다. 그리고 중국 한나라 무제에 의해 열린 해상 실크로드를 따라 인도와 베트남, 한반도, 일본으로 퍼져나갔다.
이 유리구슬을 ‘인도-태평양 구슬’이라 칭한다.
이번 학술대회엔 베트남 당반탕 교수와 일본 코즈라 연구원이 참석해 베트남 푸남과 해남, 일본 규슈와의 해양교류사를 발표한다.
당반탕 교수는 ‘인도-태평양구슬’의 주요 유적지인 베트남 남부의 옥에오 유적 최고 권위자이며 일본 코즈라 연구원은 일본의 인도 태평양 유리구슬 전문가이다.
고대사회 현산면 백포만은 해상교류의 중간 기착지였다. 이러한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경제적 부를 누린 해상세력은 해남반도 일대에 나라를 건국하는데 그것이 마한소국 중 하나인 신미국(침미다례)이다. 신미국의 중심도시였던 송지면 군곡리와 현산면 분토리 일대에선 유리구슬이 출토됐다.
특히 송지면 군곡리에선 유리옥 거푸집도 나왔다. 거푸집의 발견은 유리구슬을 자체 생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백제시기에 조성된 옥천면 성산 만의총에서도 다량의 유리구슬이 출토됐었다. 이번 학술대회에선 해남마한문화와 가야와의 교류도 조명한다. 특히 여러 가야 중 경남 함안에 위치했던 아라가야와의 교역을 집중 조명한다.
그동안 해남에선 다양한 토기가 출토됐는데 현산면 분토리와 송지면 군곡리, 삼산 신금, 현산 고분군에서 출토된 토기가 아라가야 계통이었다.
아라가야가 위치했던 경남 함안 말이산에는 127기의 봉토가 확인됐고 여기에 1,000여기에 이른 고분이 조성됐을 것으로 추정돼 당시 아라가야의 위세를 알려준다.
특히 아라가야는 여러 가야 국가 중 토기 제작 기술이 가장 뛰어났으며 토기에 불꽃무늬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한편 가야 7국은 현재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이로 인해 고구려, 백제, 신라 중심의 3국은 가야를 포함해 4국으로 칭하고 있다. 이에 마한이 포함된 5국이 돼야 한다며 마한역사 발굴 및 연구가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