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지 선해남탐조모임새봄 활동가땅끝아해 대표
윤지선/해남탐조모임새봄 활동가, 땅끝아해 대표

 

 백중 새벽 큰 달이 내 얼을 드나는 굴을 샅샅이 비추사 깨어났습니다. 백중날 지나자마자 이번엔 개기월식으로 깨어났지요. 얼을 비추는 굴이라 얼굴이라지요. 달이라는 큰 거울의 힘에 이끌려 물살이처럼 아이들과 백중바다에 들고 싶었지만 때맞춰 바람 불고 비가 왔습니다. 
나의 친애하는 땅끝바다 땅끝 히든어스. 한겨울 끝 대보름사리 한여름 끝 백중사리. 달과 함께 크게 부푸는 바닷물의 장막을 땅이 회전하며 바닷물의 힘이 세지고 갯벌의 품도 가장 커지는 날이었습니다. 해남 내려와 살며 가장 달라진 게 있다면 하늘과 바다를 자주 살피게 된 것. 해와 달이 더 가까이 느껴져요.
절기마다의 태양력에 따라 태양의 힘이 차고 기우는 기운을 읽고, 달이 차고 기움에 따른 바다의 조석 음력 물때 달력도 함께 살피게 됩니다. 여전히 도시 문명을 입고 사는 요즘 사람이라도 기민하진 못해 어수룩이 때를 살피다가 놓치는 일이 수두룩하더라도, 도시 살 때보다 더 크게 뜨고 지는 해와 달이 더 잘 보이고 잘 느껴집니다. 엊그제가 음력 7월 보름 백중날이라 앞뒤로 아직 백중사리가 몇 날 더 이어지고 있어요. 달이 더욱 깊이 당겼다가 밀어 놓는 바다의 큰 호흡. 큰물 들어왔다가 멀리까지 빠지는 물길에 대죽리 중리섬도 더 많이 드러나서 곳곳에는 일 년에 딱 한두 번만 속살이 눈뜨는 갯땅이 있습니다. 
물 움직임이 크고 살아있다 해서 ‘사리’, 조금만 움직인다 해서 ‘조금’인데, 사리의 또 다른 뜻은 살리기도 죽이기도 할 수 있는 ‘살이’이자 ‘살’이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엄마 따라 백중사리 늦여름 갯바닥에 가면 깊은 바다가 뒤집어져 큰 조개를 용왕님의 선물처럼 주워 오기도 했지만, 크게 청소하듯 바다가 뒤집어지는 날이라 위험하기도 해서, 단단하던 큰 갯고랑이 무너지고 비교적 단단하던 뻘밭도 발이 빠지던 아찔했던 날도 기억납니다. 이맘때면 여름이 물러가고 환절기 바람이 불면서 배추 정식에 알맞은 가을을 부르는 비가 오곤 하는데, 종종 큰물이 지면서 강물과 토사가 넘쳐나 강과 바다도 진하게 섞이는 날이기 때문에. 그 살에 큰 갯것이 나오고 용왕님의 선물이 나타나기도 하지요.
“할머니, 엊그제가 백중날이었어요.” 하니 “왐마, 절에도 안 다니고 바다도 안 다니니 다 까묵었네. 딴 날도 아니고 백중사리라니 뭐 줏을 거 있나 바닥에 가봐야겄네.” 그러십니다. 할머니들이 젊은 시절 아이들과 지금은 많이 달라진 송종리 갯벌에서 조개잡던 이야기 엄남포 갯벌에 갯것이 꽉찼던 이야기가 괜실히 애잔해지곤 합니다. 
큰 바다살이에 몸살도 맘살도 나기 쉬운 날. 백중날 조신히 보내고 백중사리의 축복식을 마친 이번달 일요일마다 송호바다에서 만나 갖가지 갯벌 놀이들을 펼쳐보려 합니다. 이제 많이 덥지 않은 조수웅덩이 우주를 들여다보며 놀아보려고요. 갯벌놀이 전문가 선생님들을 모시고 갯살림을 잊어가는 아이들에게 다시 생명 놀이를 만나게 해보려고 해요. 
누구든 땅끝아해가 되어 놀아보려면 이번달 일요일마다 송호바다에 나와보세요. 그거 아세요? 바다는 한계절 늦어요. 이제부터가 진짜 바다가 살찌고 멋있어지는 때예요. 해마다 줄어드는 개체수와 숨구멍들이지만 올해도 새들도 게들도 오고 있어요. 피서철 모래를 그리 들이부어도 살아남은 작디작은 털콩게들도 갯등에 별숨을 그려넣고, 백로들 사이에 유난히 새하얀 저어새들도 숟가락 닮은 입으로 물끝선을 뒤적이고 갈매기도 갈빛 청소년들을 데불고 동네 아주머니들과 맨발 어싱을 하는 지금. 바다의 살이와 안녕을 기도하는 시간. 지구라는 집에 사는 현존. 태양과 달과 함께 추는 날마다의 수피춤. 이 자연 질서의 당연함에, 지구라는 행운을, 점점 놀이를 전하며 아이들과 놀아보시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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