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이 흔히 말하는 ‘성과’라는 단어는 달콤하다. 숫자로 환산할 수 있고, 임기 내 업적으로 남기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발의 현장은 언제나 반대 목소리가 공존한다. 해남을 관통하려는 ‘에너지고속도로’ 논란이 그렇다. 
한때 ‘풍요의 상징’으로 불리던 간척사업은 수많은 갯벌을 막아 거대한 농지를 만들었다. 정부는 ̔모두를 위한 개발ʼ이라 했고, 주민들은 더 나은 삶을 꿈꿨다. 그러나 간척지의 이익은 일부에게만 돌아갔고, 갯벌의 생태적 가치는 사라졌다. 지금 우리는 ‘역간척’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다. 
해남이 맞닥뜨린 에너지 인프라 사업 또한 같은 길을 걸어서는 안 된다.
스페인과 남부 유럽의 사례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그들은 수백 년 된 구시가지와 작은 농촌 마을에도 전기를 공급하면서도, 전봇대 하나 세우지 않는다. 모든 전선을 지중화해 도시와 자연의 경관을 지키고, 감전과 재해의 위험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비용은 더 들지만, ‘긴 안목’을 가진 정책이 결국 안전과 미관, 시민의 자긍심을 모두 지켜냈다. 그들은 전기를 ‘통하게’만 한 것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기술을 썼다.
해남의 땅은 이미 수많은 개발의 흔적을 품고 있다. 더는 철탑과 변전소가 ‘진보의 상징’으로 포장돼서는 안 된다. RE100을 말하는 시대라면, 에너지를 생산하는 만큼 자연과 인간의 환경을 보존하는 능력도 함께 보여야 한다.
전선을 묻지 못하는 나라가 어떻게 탄소중립을 논하겠는가.
해남이 ‘에너지고속도로’의 기착지가 아니라,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전환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정책의 성과는 도면 위의 선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한 마을의 풍경, 한 농부의 일상, 한 아이의 기억이 그 결과를 말한다. 눈앞의 효율보다 먼 미래의 조화를 선택하는 것이 진짜 행정이고, 그것이 해남이 나아가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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