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는 걸 좋아합니다. 발레나 뮤지컬, 오케스트라 등의 공연은 주머니가 가벼운 내게는 부담스럽습니다. 대신 장애인복지 카드로 저렴하게 영화를 즐기고 있습니다. 30여 년 전에 장이머우 감독, 공리주연의 중국영화 ‘홍등(紅燈)’을 보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여러 명의 부인을 거느린 남자가 하룻밤을 함께 할 여자의 처소에 홍등을 매달게 합니다. 그것이 그 집안의 오랜 전통입니다. 부인들은 서로 시기하고, 모략하며 남편을 자신의 방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애씁니다. 아들을 생산해야 신분을 보장(?)받을 테니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대학을 중퇴하고, 계모에 의해서 네 번째 첩으로 들어간 주인공(공리)은 자신이 노리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허탈감에 빠져있던 주인공은 다른 남자와 밀회를 즐긴 부인을 남편에게 고자질합니다. 그리고 그녀가 살해당하는 걸 보고 미쳐버리지요. 남자는 개의치 않고 새로운 부인을 맞아들입니다.
1920년대 중국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지만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왕은 물론이고, 세도가의 양반들도 똑같은 행태를 보였으니까요.
영화를 보고 발칙한 상상을 했습니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이란 말은 오랫동안 주례사의 단골 멘트였습니다. 일부일처제에서 나온 말이겠으나 이제는 진부한 말이 되어버렸습니다.
사랑은 영원히 지속되는 감정이 아니라 계절이나 날씨처럼 바뀐다는 게 보편적인 사실에 가깝습니다.
일부일처제의 결혼제도를 없애고, 모계사회로 바꾸면 어떨까요? 원하는 여자랑 하룻밤을 보내고 싶은 남자들이 여자들 앞에 줄을 섭니다. 남자들을 살펴본 여자들이 남자를 선택해서 잠자리에 듭니다. 몸 좋은 남자를 원하는 여자들은 배에 왕(王)자가 또렷한 몸짱을, 맛있는 걸 좋아하는 여자는 요리 잘하는 남자를, 음악을 좋아하는 여자는 노래를 잘하며 악기연주에 뛰어난 남자를 고를 것입니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을 사회가 공동으로 양육한다면요?
한 남자가 아니라 사회구성원의 남자들이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양육비와 교육비가 개인 대신 공동의 책임이 되니까 부담이 줄어듭니다.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잘되기를 바라지 않아도 되니까 아이들을 다그치면서 애면글면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교육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자연스럽게 기러기아빠들도 사라질 것입니다.
영화 홍등에서 여자들이 남편을 유혹하려고 애쓰듯이 남자들도 그럴 것입니다. 멋진 몸을 만들기 위해서 열심히 운동하고, 예의를 몸에 익히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 요리학원에 다니고, 청소와 정리·정돈도 잘해야 합니다. 이것은 필수 요인입니다.
부차적으로 경쟁에 살아남기 위해서 노래 연습과 악기연주, 그리고 춤을 배우려 부단히 노력할 것입니다. 여자들도 똑같이 노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남자들도 보는 눈이 있으니 아무 여자 앞에나 줄을 서지는 않을 테니까요. 건강과 지성, 예의, 미모, 예술적 소양을 갖춰야 합니다.
계약 결혼도 하나의 대안입니다. 한 남자, 한 여자랑 사오십 년을 산다는 건 너무 지루하고 힘든 일입니다. 오죽하면 ‘잡은 물고기에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는 말까지 있겠습니까? 지지고 볶으면서도 일부일처제를 고집하기보다 삼사 년 단위로 계약의 지속 여부를 묻는다면 적당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아서 부부생활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남자들에 의한 성폭행과 성추행, 전 남자친구나 스토커에 의한 살인이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인구소멸을 걱정하는 시대입니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 했듯이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