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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오랜만이지? 그렇게 너랑 열심히 편지를 주고받았었는데 이젠 서로 어디서 무얼 하는지도 모르게 되었네.
나 결혼했어. 며칠 있으면 벌써 결혼 2주년이야. 그리고 여차 저차 해서 해남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고, 완전히 다른 환경 다른 사람들과 살고 있어. 여기 와서 신문에 실릴 편지를 쓰게 됐는데 네 생각이 나더라. 우리가 중학교 1학년 때 주고받았던 상상편지 기억나? 매일 한 반에서 보면서도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았는지…. 편지를 쓰고 또 쓰다 생각해낸 아이디어였지. 대학생이라고 가정하고 학과도 남자친구도 모든 걸 상상하며 썼던 우리의 이야기.
결혼 전에 그 때의 편지들을 한 번 읽어봤어. 네 것만 있어서 내가 어떤 내용들을 썼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지만 가상현실을 참 열심히도 살았더라. 넌 어떤 대학생활을 보냈을까? 네가 중학교 때 그리던 그대로였을까? 연대 음대로 되어있던데.
그러고 보면 너 그 때 음악을 특별히 좋아하진 않지 않았냐? 꼭 순정만화 속의 주인공과 같은 설정이었어. 나는 어떤 대학생을 상상했는지 기억나? 연극영화과 학생으로 했었던 것 같은데.
근데 있잖아. 학과는 같지 않았지만 학교에서 연극은 했어. 상상한 것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재밌는 대학생활도 한 것 같고. 현실에서는 상상하지 못 했던 어려움도 많이 있었던 거 같아. 그 때 내가 쓴 편지들 다시 읽어보고 싶다.
너한테 보냈던 마지막 편지도 생각나. 그 때 난 한참 사춘기의 방황과 우울로 인하여 나의 죽음으로 편지를 끝냈었지. 그 뒤로도 가끔 그걸 생각하며 ‘참 멋졌었다.’ 생각하곤 해. 상상이었지만 멋진 죽음을 맞이했었지. 이제 다시 그런 상상의 편지를 주고 받을 친구를 만날 순 없겠지? 사실 신랑하고 연애할 때 내가 한 번 상상편지를 써 보자고 했었어. 근데 늙었는지 안 되더라고. 그 때 인물 설정을 섬에서 살고 있는 말을 하지 못 하는 소녀로 했었어. 그러다 우연히 신랑의 편지를 받게 되지. 그런데 서로 한 번씩 주고받고는 끝나버렸어.
여전히 철들지 않았지 나? 왠지 영원히 그럴 것 같아. 어렸을 때부터 직관적으로 느낌이 왔었어. 철 들어봐야 재밌을 거 없다. 영원히 철들지 말자. 근데, 나도 이미 말도 안 되는 상상 속에 빠질 수 없을 만큼은 시시한 어른이 된 것 같아. 아쉬워. 아직 아기는 없는데 아이랑 말이 통할 때 쯤 되면 아이랑 편지나 주고 받아볼까? 난 우리 아이가 편지를 쓸 수 있는 아이였으면 좋겠어. 어렸을 때 너랑 주고받으려고 모아놓았던 편지지들도 아직 있던데, 다음에 친정집에 가면 챙겨와야겠다. 기적처럼 네가 해남의 지역신문을 읽고 다시 연락이 되면 재밌겠다. 만나게 되면 예전의 그 편지들 바꿔서 간직하자. 나중에 내 편지를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어.
나름 그 때는 글도 잘 썼던 것 같은데 요즘은 크리스마스카드 한 장 쓰는 것도 힘들어. 낭만이 점점 사라지는 거지. 이러다가 아줌마가 되어 버리겠어. 열다섯 살 죽음을 맞이했던 내 상상 속의 또 다른 나를 깨워야겠어. 열다섯 부터 다시 시작 하는 거야. 상상 속 하영이의 또 다른 삶을. 네가 날 찾을 수 있길 바라며, 그 때까지 잘 지내. 바이바이.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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