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채 영글지도 않았는데 입동의 문턱에 들어선 것처럼 마음이 이리도 스산하고 조급해 지는 건 너의 입대일이 일주일도 남지 않은 탓이리라. 이제야 새삼 네가 초등학교 3학년에 오를 즈음을 돌이켜 본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서울에 올라와 밥벌이에 급급해 따스한 아침 한 끼 제대로 지어 먹였던가, 옷매무새를 단정히 만져 학교에 보냈던가 생각하니 죄스러운 마음 그지없다. 호의호식은 고사하고 갖고 싶었던 건 얼마나 많았으며, 하고 싶었던 건 또 얼마나 많았으랴. 또래 아이들의 응석이 너에겐 사치였을 것이며, 학부모회의 참석 여부를 묻는 가정 통지문조차도 어린 너에겐 혼자 감내 해야 하는 짐이었으리라.
미안하고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아들아, 정말 잘 자라 주었구나. 어느 시에서 그랬던가? 아버지의 술잔엔 눈물이 반이라고, 아비는 술잔에 너희들에 대한 미안함을 채워 마셨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어떤 사람과 시비가 있었을 때 두 눈 부릅뜨고 아비를 지키며 곁에 서 있는 너에게
저리 가라며 나무랐지만 아비는 얼마나 든든했는지 아니? 어쩌다 고깃근이나 먹이려 너희들을 앞세우고 나설 때 천하를 호령하는 듯한 아비의 기분을 아는지….
지난 몇 개월 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던 농협 하나로 마트 직원들이 너의 안부를 물으며 “아드님 너무 잘 생겼어요.” “싹싹하고 얼마나 일도 잘하고 예쁜지 몰라요.” 할 때마다 너희들끼리 자라왔던 지난날은 잊은 채 아비는 또 얼마나 어깨가 으쓱했던지….
이제 입대하는 아들에게 바라건대 애국심을 앞세워 너의 몸을 가벼이 하지 말거라. 군에 가는 자식에게 어찌 애국심을 갖지 말라 하겠냐만 보아 왔듯 썩어빠진 이 나라의 위정자들에겐 숭고한 군인들의 희생마저도 자기들의 이익에 부합되는 호기로 삼거나 또는 귀찮은 하나의 사건으로 치부해버리더구나. 이 나라 군인 모두가 부모들에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이거늘…. 부디 건강하게 복무를 마치고 돌아오길 바라는 부모의 이기심도 한몫 했으리라.
이 땅에 건강한 몸으로 태어나 이만큼 자라도록 너를 지켜준 사회와 국민, 그마저 허락되지 않은 약한 자들의 안위를 지키려 아깝고도 아까운 젊은 날의 소중한 시간을 희생하는 것이다. 항상 자기계발에 힘쓰고 건강한 육체와 사회의 일원으로서 살아나갈 건전한 정신으로 무장해 오길 바란다.
요즘 군대 편해졌다고는 하나 그래도 군대는 군대다. 굳세어라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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