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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의 고배를 마시고 세 번째에 붙은 임용고사. 그때는 교육의 문이 크고 높기만 하여 함부로 올려다보지 못했던 그곳에 몸을 담은 지 4년째다.
첫 출근 날 넥타이를 질끈 목에 동여매고 양복 자락 휘날리며 교정에 들어섰던 설렘이 아직도 내게 남아 있는지 돌아다본다.
교실에 들어설 때 모든 아이들이 나를 보고 환히 웃던 모습이 김용택 시인의 표현대로 ‘나를 향해 피는 꽃’ 같아 눈부셨던 기억을 눈에서 찾는다.
‘선생님’하고 부르는 목소리가 짜릿하고 예쁘게 뇌리에 스며들던 기억을 귀에서 찾는다. 찾는다는 것은 잊혀 간다는 것이다. 찾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존재의 소중함을 잊어가는 것이다.
언제나 손에 닿아서 늘상 느낄 수 있는 것에서 행복과 기쁨은 솟아난다. 난 어느새 병들고 있는 것일까?
예나 지금이나 실수투성이인 나를 넉넉하게 품어주고 있는 산이중학교.
내 발길이 모두 닿아 조금만 우수에 젖어들면 곳곳에서 추억으로 달려오는 이 곳. 교사는 한 학교에 4년을 근무해야 하므로 이제 난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야한다.
회한과 자괴 속에 빠져들면서도 나를 쉼 없이 건져 올리는 것은 추억이라는 이름이다.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뛰놀며 헥헥거렸던 모습, 교실에서 분필가루 날리고 침 튀겨 가며 수업했던 모습, 갑자기 닥친 공문 보고에 허둥지둥하며 컴퓨터와 씨름하던 모습 등 조금이라도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추억이 내 눈 앞에서 아른거린다.
가르치러 왔지만 많은 것을 배웠다.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많은 말을 쏟아 부어야 직성이 풀렸다. 45분 내내 열변을 토하고 칠판을 몇 번 지워야만 좋은 수업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와 아이들은 조금씩 지쳐 갔다. 아이들과 숱한 고민의 숲에서 헤매다가 깨달은 바는 경청이었다.
턱에 손을 갖다 대고 고개를 약간 숙여 아이들의 말을 듣게 되는 버릇이 생겼다.
아이들은 매번 교훈으로 내 앞에 찬란하게 피어난다. 난 그 꽃의 향기를 맡고 물을 주면 되는 것이다.
교학상장,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책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고 자신의 꿈에 대해 고민하고 쉼 없이 노력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나에게 산 교과서다.
또한 끊임없이 상담하고 아이들의 생활지도에 고민하며 교수 학습과 공문 처리에 탁월한 연륜을 발휘하시는 선배분들은 선망의 대상이다.
아이들에게 상처 받고 시름하는 후배에게 따스한 말을 건네시며 당신의 경험을 말씀해주시고 수업 공개 후 코 빠진 후배에게 술 한 잔 하자며 어깨를 툭 치는 선배들을 앞으로도 계속 뵐 수 있을까?
첫 발령지인 산이중학교는 앞으로 내 교사 생활의 비교 준거가 될 것이다. 어느 학교를 가든 그 무게추는 산이중학교에 놓일 것이다.
시골 아이들의 풋풋한 미소와 수줍음, 출퇴근길 경운기와 시름하며 거름 냄새에 아찔해 하던 내 모습을 이제 낡은 추억 서랍 속에 고이 넣어 둘 것이다.
그래서 삶이 버겁고 절뚝거릴 때 한 번씩 꺼내 보고 웃고 울고 할 것이다.
언젠가 다시 이곳을 찾게 된다면 그때는 정신의 키가 한 뼘 더 자란 모습으로 교정에 들어서고 싶다.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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