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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와 원교, 고산이 걸었던 고난의 길
좌일장·남창장과 주변 선술집도 눈길
땅끝길 계절마다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와
추사는 무슨 생각을 하며 이 길을 걸었을까. 제주도 유배길. 모든 영화를 뒤로한 채 그는 무수한 사유를 안고 이 길을 걸었을 것이다.
완도 유배길에 오른 원교 이광사도 이 길을 걸었다. 왕족의 집안, 그러나 이제 섬으로 유배되는 죄인일 뿐이다.
윤선도도 이 길을 걸었다. 완도 보길도로 향하는 은둔의 길, 유배의 길이 아니였기에 그는 조금 느긋하게 주변 경치를 감상하며 걸었을 것이다. 북일 좌일에서 북평으로 이어지는 옛길, 이 길은 쇠노재 아래에 꽁꽁 숨어있다. 쇠노재 도로 밑에 이렇듯 버젓한 길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이 길은 유배의 길이요, 은둔의 길이다. 이 길을 걸었던 추사도 원교도 고산도 모두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추사는 추사체를, 원교는 동국진체를, 고산은 한글로 쓴 가사문학을 남겼다. 그리고 이들은 정치 불운아였고 예술가였고 사상가였다. 그들이 걸었던 길을 걷는다.
북일 좌일에서 땅끝마을까지 이어지는 36km 구간에는 무수한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많은 이야기만큼 너무도 풍부한 문화와 풍물을 만날 수 있는 길이다.
좌일시장과 남창시장이 그 하나이다. 길에서 만나는 시골 5일장, 두 곳 다 싱싱한 생선을 만날 수 있는 수산시장이다. 시장 주변에서 만나는 선술집. 좌일장과 남창장 주변에는 허름한 식당과 선술집이 즐비하다. 계절 횟감만 파는 선술집과 갯장어만을 취급하는 식당. 낚지 전문점, 북일의 명물 개불을 먹을 수 있는 식당 등 조금의 정보만 있어도 싸고 푸짐한 횟감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곳이 즐비하다. 땅끝 옛길은 농촌마을을 끼고 돈다. 마을에서 만나는 당산나무와 쉼이 있는 마을정자, 안간힘으로 나무에 매달려 있는 홍시 하나 등 모든 것이 정겹다. 사람 냄새가 난다.
또한 땅끝옛길은 계절마다 볼거리가 풍부하다. 겨울에는 푸른 겨울배추와 마늘밭이 싱그럽고 봄에는 파릇한 새싹과 벼논, 여름에는 싱그러운 바다와 내음, 가을에는 황금들녘이 펼쳐진다.
들녘에서 일하는 농부도 바닷가 어부도 하나의 풍경으로 다가오는 길이다. 걸으면서 보는 만물은 모두가 정겹다. 그것은 느림에서 오는 느낌이요, 서로가 바라보는데서 오는 소통 때문일 게다.
북일 좌일에서 땅끝마을로 이어지는 옛길, 이 길은 생태가 있고 문화가 있고 역사가 있는 길이다. 길에서 만나는 이진성, 제주도 유배길이요, 제주말이 오갔던 교역의 길이다. 또한 이순신이 머물렀던 역사의 길이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길, 너무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풍경을 만나고 풍물을 만나는 길, 땅끝옛길을 다시 걸어보고 싶다.
박영자 기자/
해남우리신문
wonmok76@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