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1월. 내가 국민학교 6학년 겨울방학 때이고 중학교 입학하던 해이다. 그때 겨울에도 눈이 많이 내렸고 매우 추웠다. 아마도 지금 아무리 춥다한들 그때만 했을까 싶다. 왜냐면 적어도 그때 겨울이면 동네 앞 냇물이 다 얼어서 항상 여름에 목욕하던 냇가에서 썰매를 타고 윗동네까지 다녔으니까. 최근 그 이후로 동네 앞 냇물이 완전히 얼어서 썰매타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최근 날씨가 많이 추워서 얼었는지는 모르겠다.
내 나이 열서너 살 때 겨울이면 주로 갈퀴나무를 많이 하러 다녔던 기억이 난다. 무엇보다 생생하고 재미났던 일이 노루치, 토끼치 놓고 아침마다 등산 겸 확인하러 다니는 일이다. 그해 1월 11일로 기억된다. 아침에 계곡면 우리마을 뒷산(우리마을인 월신리와 옆동네인 법곡리가 경계인 뒷산)에 내가 놓아둔 노루치를 보러 갔는데, 이게 웬일인가? 드디어 노루가 걸려있었다. 그것도 살아있다. 나를 노려보고 있다가 다시 힘껏 용쓴다. 놀라움과 반가움, 그리고 순간적으로 이걸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게 노루치에 걸리면 대부분 죽기 마련인데 자세히 보니 아마 뛰어가다 앞다리와 목이 같이 걸려서 숨은 쉴 수 있어서 살아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살아있는 노루는 중간크기의 염소만 한데 어찌 할 도리가 없어서 나보다 세살 많았고 동네 산지기 살던 집 친구이자 형에게 부탁을 했다. 그래서 둘이서 두 다리를 잡고 우리집까지 가져갔고, 어른들은 놀라는 표정이었다. 할아버지는 기특하게 생각하고 좋아하셨는데, 어머니 반응은 그리 좋지 않았다. 나중에 산짐승을 잡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신다는 걸 알았다. 어쨌든 잡아온 산 노루여서 동네 어른들이 웅성거리며 모여들었다. 당시 몸이 많이 아프셨던 아저씨가 계셨는데 사슴피 대신 노루피도 몸에 좋다며 6천원에 사갔다.그 분은 노루피를 드시기 위해 대밭에서 대롱으로 빨대를 만들어 받았고, 노루피를 소주에 섞어 드셨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노루판 6천원으로 중학교 입학금이 얼마인지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는 않으나 해결한 것으로 보인다. 그 뒤로도 몇 마리의 노루를 잡았고 팔지는 않고 집에서 요리해서 먹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뒷산에 노루, 토끼들이 많이 뛰어다니는지. 특히,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 때에는 온 산천지에 노루발자국, 토끼 발자국으로 수를 놓았었는데, 가끔은 토끼 발자국이 마당끝하고 연결되어 언덕 아래 있던 칙깐 지붕까지도 올라간 경우도 있었다. 아, 언제쯤 귀향해서 그 어린 시절의 추억속으로 다시 빠져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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