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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으로 술을 입에 댄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학교의 큰 연례행사 중 하나인 체육대회에서 우리 반이 우승을 한 것에 대한 뒤풀이 자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전까지 나는 목에 술을 넘기기만 해도 목이 타는 듯이 아프지 않을까 순진하게 생각했을 정도로 음주경험이 전무했었다.
같은 반 아이들과 저녁식사를 한 뒤에, 체육대회 때 같은 팀을 이루었던 1학년 후배들 몇 명을 불러 갖는 술자리였다.
당시에는 나를 포함한 모두가 미성년자였으므로 술집에 들어갈 수는 없었고 따로 야외에 자리를 마련해서 간단한 안주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 때 처음으로 마셔본 술(소주에 음료수를 약간 섞은 것이었다.)은 의외로 마시는 데에 별로 고통이 느껴지지 않아 신기했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신기했던 것은 약 1시간 뒤에 같이 마시던 사람 중에 몇 명이 몸을 가누지 못하면서 혀가 꼬여 알아듣지도 못할 큰 소리를 꽥꽥 지르는 것이었다.
그뿐만이 아니고 어떤 여학생은 갑자기 훌쩍훌쩍 울기 시작하고, 서로 싸우는 사람, 곯아떨어진 사람 등으로 한바탕 난리가 났다.
아마도 대부분 음주경험이 없던 어린 학생들이라 자신의 주량을 모른 채 분위기에 맞춰 단시간에 폭음을 해서 그런 일이 벌어졌던 것 같다.
아무튼 그 때 뒷정리를 하는 데에 꽤나 골치를 썩였고, 나는 ‘아, 술을 마시면 평소와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구나.’ 라고 생각하며 그들을 열심히 부축했던 기억이 난다.
그 날 이후로 음주 세계의 눈(?)을 뜨게 된 나는 가끔씩 학교의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면 친구들의 하숙집에서 술을 마시긴 했지만, 그로 인해 크게 말썽을 피우거나 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고등학교 졸업식 이틀 전에 가진 마지막 반모임에서 일은 터지고야 말았으니, 고등학생으로서 마지막 모임이라고 생각하니 뭔가 아쉬우면서도 들뜬 마음에서였는지 연거푸 소주잔을 들이키는 바람에 나는 속된말로 완전히 맛이 간(?) 상태가 돼버리고 만 것이다.
소위 필름이 끊긴 나는 비상 호출된 다른 친구들의 부축을 받으며 집에 돌아와야 했다.
물론 다음날 머리는 깨질 듯이 아팠고 하루 종일 숙취로 고생해야 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그때 나를 부축해줬던 친구들이 내가 그들의 머리에 마구 박치기(!)를 하고 길거리에 토악질을 하며 횡설수설하는 등 온갖 주사를 다 부렸다는 이야기를 해 몹시 부끄러웠다.
그 날 이후로 나는 항상 술자리에 있을 때 과하게 취하는 것을 경계하게 되었다.
성인이 된 지금은 어떤 모임이 있을 때마다 항상 술이 빠지지 않는다. 대학 동기나 선배, 후배와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교수님과도 술자리를 함께 할 때가 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친구들이 오랜만에 모였을 때, 입대한 친구가 휴가를 나왔을 때 등 술자리를 가지는 경우는 아주 많다.
좋은 일이 있을 때나 나쁜 일이 있을 때나 늘 술자리에서 기쁨과 슬픔이 오고 가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 술이 인간의 깊숙한 내면의 경계심을 느슨하게 풀어주어, 서로에게 더 진실된 모습을 보여주도록 만들기 때문이리라.
취한 상태가 되면 평상시보다 대부분의 자극에 둔감해지고, 인지능력과 사고능력이 감소한다. 즉, 평소보다 좀 ‘모자란’ 상태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우리는 즐겁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술이 가져다주는 ‘부족함의 미학’이 아닐까?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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