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일주일 남기고 있는 이맘때면 어머님 손길이 무척 바빴던 걸로 기억됩니다. 식혜 담느라, 엿 고느라, 아궁이엔 하루 종일 장작불이 타오르고, 가래떡 뽑기 위해 큰 시루 가득 고두밥 쪄 지게에 지고 물방앗간 앞에 긴 줄 서서 기다리면 두 줄로 하얗게 뽑아지던 흰 가래떡 한 도막씩 얻어먹었던 기억들.
온 집안 식구들 다 동원돼 손 부르트며 가래떡 썰어 마루에 펼쳐 말리고, 말리던 떡살 훔쳐 호랑(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먹고, 설빔으로 큰 맘 먹고 사주신 다우다 잠바, 운동화 한 켤레 몇 번씩이나 미리 입어보고 신어보던 그 옛날이 그립습니다.
꿩 대신 닭이란 속담이 생겨났다는 떡국속의 장조림 닭은 아마도 집에서 가장 큰 닭으로 잡았던 것 같고요. 초가삼간 크게 청소할 것도 없지만 최대 최고의 명절인 설을 위해 앞마당, 뒤안, 대문 앞 깨끗이 청소하고 온갖 음식 장만에 온 동네가 꼬스름한 냄새로 가득했던, 그리고 희뿌연 연기가 굴뚝마다 넘쳐나던 장면은 어디로 갔는지.
7~80년대 학생, 군인신분을 거쳐, 90년대 직장생활을 하며 객지에서 터를 잡고 살면서 명절 때면 그래도 고향을 찾아 반가운 옛 추억을 상기했습니다. 그러나 이젠, 홀로된 어머님이 역귀성하시면서 그나마도 형식적인 인사치레로 변한 지금의 현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왜 매년 이맘때면 하얀 눈이 내리던 그 날, 눈 덮인 대문 앞 돌계단을 고무신 새끼줄로 동여매고 물동이 인 어머님 모습이 선명하게 뇌리 속 가득 떠오르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짠하게 가슴 저려오는 옛 추억에는 항상 어머님이 가운데 자리하시며 한편의 파노라마처럼 회상되는 순간들이 봄밤 소쩍새 울어대는 그윽한 전설처럼 그립고 또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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