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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27가구가 모여 흥성거렸던 적도 있었으나 그것은 그저 설화 같은 이야기일 뿐이란다. 이 작은 마을은 “내가 농사짓다 요로케 쪼그라들어 부렀오”라고 말하는 김선례(78)할머니처럼 애잔함도 묻어있다.
마을 주민들은 마을 회관을 박통회관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70년대 박정희 정권 때 지어준 회관이라 그렇게 부른다는데, 해남에서 인구수로 꼴찌마을답게 회관 또한 조그만 하기 짝이 없다. 고암마을은 앙증맞다는 표현이 적격이다. 이장 최상필(53)씨는 번듯한 마을 회관 하나쯤은 지원해줘야 하지 않느냐고 말한다.
고암마을은 한때 옆 마을인 용전리와 합병을 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행정 절차가 까다롭고, 많은 비용이 든다는 말에 생각을 접기로 했다. 더부살이의 영화보다는 구차하지만 차라리 주인의 길을 택한 것이 났다는 생각도 든단다. 최이장은 적극적으로 귀농을 유치하고 있다. 벌써 2세대가 서울 쪽에서 입주해오기로 했다고 하니 올해는 인구가 늘어날 예정이다.
고암리는 주민이 전부 12명이다보니 한 가족이나 다름이 없다.
이장의 전화에 마을회관에 모인 주민들은 시종 화기애애하게 정담을 나눈다. 자연스럽게 술잔이 오가고 사람 사이의 정이 오가는 마을인 고암마을은 작지만 사람 냄새가 나는 마을이었다.
박태정 기자/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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