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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년 전 그 옛날 콧물 훌쩍이며 초등학교에 다녔던 우리의 소싯적은 왜 그리 독살스럽게도 추웠을까요.
아마도 먹을거리 입을거리가 부실한, 너나없이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이라 실온보다 체감온도가 훨씬 춥게 느껴진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춥고도 추웠던 설 전후로 양지바른 담벼락에선 선머슴아들이 내 지르는 밀치기소리 우렁찼고, 꽁꽁 언 동네 앞 물 잡힌 천수답에서는 수십명씩 몰려다니며 칙칙한 메무새로 썰매타고 팽이 치며 소락대기 질러대던 난장판이, 날이면 날마다 연출되곤 했습니다.
썰매 밑바닥에는 인근 정미소에서 몰래 끊어온 도톰한 철사가 얼음을 갈랐고 적당한 소나무 밑둥을 허리춤까지 톱으로 자르고 낫으로 잘 다듬어 모양을 낸 다음 역시 정미소에서 주워온 쇄다마(쇄구슬)를 박아 알맞은 길이로 다시 잘라내면 그게 바로 팽이라.
썰매 타다 얼음 엷은 곳에 빠져버린 재수 없는 녀석이 콧물 찔찔거리며 남성성냥, 유엔성냥으로 논둑에 불 지피고 빠진 발을 말릴라치면 갈아 신은지 오래돼 바닥이 떡이 된 그 나이롱 양말 밑바닥이 홀라당 타 버리기 일쑤라.
한 밤중이 다 돼서야 바닥도 없는 양말 꿰차고 엄마 눈치 보며 살금살금 기어 들어가 양말 몰래 벗어 안 보이게 처박아 놓으면 그 담날 백열전구에 감싸인 양말조각이 할머니의 손에서 얼기설기 기워져서 되살아났습니다.
정월 대보름 전날은 아이들도 맬탁없이 바빴습니다.
내일 액매기(액막이) 할려면 유리병 잘게 조사(쪼아) 풀과 함께 잘 익이고(섞고), 비료포대에 함께 감싸 잡아 연 목줄에서 한 2~3 메타쯤 띄고 시작해서 10여 메타쯤 믹였을라나? 연줄에 잘 믹여진 그놈은 내일의 결전을 예고했습니다.
밤에는 엄마가 깎아 주시는 시원한 무 한쪽 씹으며 시키는 대로 “무수태팽”… 사실은 無事泰平(무사태평)인데…
잠자면 눈썹 희어진다는 엄마 말씀에 뜬 눈으로 밤을 새려 기를 써도 밀려오는 잠 이길 장사는 없었습니다.
열 두시 되기 전에 졸다 씹다 꾸벅꾸벅. 급기야 한비짝(한 쪽)에 찌그러져 업어 가도 모릅니다. 온 종일 밖으로 싸돌아다니고 늦게까지 노닥거렸으니 아침인들 쉬울손가.
밥 얻으러 가라고 할머니가 깨우시면 후다닥 일어나며 “나 안 잤어! 안 잤당께!”
빙긋이 웃으시며 “그래 그래 알았다 알았어”
아홉집 밥을 얻어먹어야 그해 운이 좋다고 얼검치 보듬고 집집마다 돌며 오곡밥 한 덩이씩 얻어오고, 반대로 우리집 찾아오는 동네 애들 역시 한 덩이씩 집어 보내고, 얻어온 밥과 나물로 온 식구가 아침을 먹습니다.
학교 길에 친구놈들이 “동환 어!” 부르면 대답 않고 “내독(내더위)” 해버리던가, 내가 먼저 “승관 어!, 종래 여!” 부른 담에 “머다”라고 대답하기 무섭게 “내독”하고 팔아 치워야 올 한 해 땀띠에 안걸린다나 어쩐다나.
그 무섭고 어려웠던 선생님에게도 내 더위 팔아먹는 모난 녀석들도 있긴 있었습니다.
학교 파하기 무섭게 집으로 달음박질쳐서는 어제 준비해놓은 대보름의 하이라이트, 연 싸움을 준비합니다.
양지 바른 동네 어귀에서 각자 준비한 방패연들이 멋진 자태를 뽐내며 솟아오르고 가난해서 미처 창호지 준비 못한 집 애들은 비교적 매끄러워 책까우(책표지)로도 썼던 비료포대 속지로 만든 가오리연, 일명 홍애딱지에 꼬리 길게 달아 바람에 태워 올립니다.
멀리 가까이 이 동네 저 동네에서 높고 낮게 떠오르며 하늘을 수놓는 수십, 아니 수백 개의 연들이 얽히고설키다 맞댄 연줄끼리 몸싸움이 시작됩니다.
참 묘하게 요놈 저놈 다 붙어도 모조리 이겨낸 최강자가 반드시 나타나고, 그 놈은 작년에도 연 쌈 잘했던 역시 그 놈, 그 친구만의 특별한 노하우가 있었던 것이죠.
이제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유리가루를 얼마나 맞춤하게 잘 먹였는가와 유리먹인 그 구간을 잘 알고 있다가 높낮이를 절묘하게 조절해가며 반드시 그 구간만으로 연 쌈을 했으니 당연히 이길 수밖에… 실로 존경스러운 친구였습니다.
연 쌈 하지 않는 친구들은 연 목줄 밑에 솜으로 뭉친 도화선에 불을 붙이고 하늘 높이 올린 후 끊긴 그 연과 함께 액운을 날려 보내며 행운을 기원했습니다.
밤에는 알록달록 고운 한복으로 갈아입은 엄마들의 강강수월래가 이어지고 볏짚과 솔가지로 만든 달집이 훨훨 타오르면 아이들은 나이만큼 그 불을 넘으며 이루고픈 소원을 빌었습니다.
어느 시대를 살았건 그 시대 젊은이들의 문화를 어른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건 다 마찬가지 일겁니다만 요즘의 아이들 역시 방에만 틀어박혀 공부도 컴퓨터, 소통도 컴퓨터, 오로지 컴퓨터와 씨름합니다.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오로지 공부 공부, 학교 끝나면 이 학원 저 학원으로 끝도 없이 내몰리며 무한경쟁으로 지쳐가는 안쓰러운 우리 아이들입니다.
입성 먹성 다 부실했지만 산으로 들로 망아지처럼 내달리며 자연을 벗 삼아 뛰놀았던 그 시대의 우리들은 지금의 아이들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시간적 여유가 있었기에 도덕이 어쩌고 예절이 어쩌고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이 도덕과 예의범절 준수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여졌던 건 아닐까요?
짠한 우리 아이들에게 많은 시간을 선물로 줍시다.
해남우리신문
wonmok76@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