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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1.
밥상이 들어간다. 이때부터 애 아빠와 난 두 팔을 들어 모서리를 막고 무릎을 세워 사방경계를 선다. 그때까지도 큰아이는 책속에 빠져 신청도 않고 난 서너 번 목청을 돋워 큰아일 겨우 밥상 앞에 앉힌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하려는 작은애는 곧장 밥상으로 돌진해 게걸음으로 올라타다 주저앉다 제 할 일에 바쁘다.
숟가락 두 개를(얼마 전까진 세 개) 번갈아 들고 한 술은 아이 입에 또 한 술은 젖을 먹여 허기진 내목구멍으로 밀어 넣는다. 어쩔 땐 숟가락들이 헷갈려 들어가 헛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그렇게나 긴장을 하며 보초를 서다가도 아이의 허공을 휘젓는 손놀림에 숟가락과 밥알은 저만치로 튀어 흩어지고 상 밑으로 내려놓은 김치그릇 속으로 아이의 한 발이 여지없이 쑤셔 들어가기 일쑤다.
#일상 2.
모임이다. 큰애 작은애 옷을 입힌다. 심지어 속옷까지도 구색 맞춰 입히고 기저귀며 손수건이며 물통에 간식까지 잡히는 대로 가방에 쑤셔 넣는다.
정작 내 얼굴엔 널린 립스틱 하나 찍어 바르지 못한 채 어제 입던 옷 다시 주워 입고 하나는 안고 하나는 걸리며 시간에 맞춰 뒤뚱거리며 나선다. 나와서도 나대는 아이들 뒤치다꺼리는 이어진다. 큰애는 화장실 간다며 발을 굴리고 작은애까지 질퍼덕 싸질러 놓은 기저귀를 갈고 나면 그 어떤 내용도 집중할 수 없이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더욱 비워진 맘으로 집으로 들어온다.
출산 전엔 남부럽지 않게 방탕한(?)생활의 연속이었는데 이제 맥주 한 잔도, 커피 한 잔도 젖먹이 아이생각에 참아 내야하고 치워도 치워도 돌아서면 어질러지는 단칸방은 이제 포기상태로 머리만 지끈거리게 한다. 자격지심일까? 누군가가 초라한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듯하다. 뒤에서 수근 거리며 변해버린 내 모습을 위아래로 훑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더욱더 나는 작아지고 내 아이들은 커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남보다 몇 배는 늦은 결혼과 출산을 통해 난 인생을 새로 사는 것 같다. 결혼해서는 세상이 결혼한 여자와 결혼하지 않은 여자로 나뉘더니, 이제 모든 기준이 아이를 낳아본 여자와 그렇지 않은 여자로 나뉜 듯하다. 이세상의 모든 어미들이 이런 고통과 인내로 제 자식을 키워낸다는 숭고한 진리를 몸소 터득해 가는 시간들이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이 혼자 육아하기의 버거움이다. 첫 애 때는 아이가 열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젖은 어떻게 떼는 건지, 똥오줌을 가리게 하는 것까지도 너무나도 버겁고 두려운 일이었다.
물론 애 아빠도 도와주고 지역 내 육아모임을 통해 같은 처지의 엄마들과 소통하며 어찌어찌 해오기는 했지만 옛날 우리 조상들이 살며 몸으로 전해 내려오던 자연스러운 생활방식이 그리웠다. 요즘은 삼십대 후반의 노령출산이 늘고 있는 세태란다.
지금의 나는 창작에 목말라하는 예술가도, 많은 이들을 지도하는 선생도 아니다.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사랑스러운 두 딸의 엄마일 뿐이다. 난 그 자리에 아주 만족한다. 이제 제법 커서 손이 덜 가는 큰애의 톡톡 튀어나오는 말솜씨에 웃음 짓고 젖을 물고 까만 눈망울을 굴리며 끄르르 웃는 작은애의 몸짓에 행복감이 밀려든다.
이미 인생을 살아온 선배엄마들은 얘기한다. “지금 이순간의 힘듦도 잠깐이여. 지금이 제일 행복한 때라는 것만 기억해.” 그래서 나는 오늘도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내 아이들과 주변의 아이들을 돌아보며 소리쳐본다.
“이 세상 모든 어미 된 자들이여, 그대들은 인간을 창조하고 길러내는 곧 신이로소이다!”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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