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마시면 코를 고는 형이 싫다며 혼자 자겠다는 걸 애써 말리려니 억지스럽기도 했지만 이내 그러겠노라 순응하는 둘째가 딸처럼 예쁘다.
‘예스맨’이라는 별명을 가진 큰아이가 어느 날부터 그 말 대신 “제 일 제가 알아서 할 게요”하던 중학생이 되던 그해 공부방은 따로지만 싱글사이즈 침대 둘을 똑 같은 모양으로 나란히 한 방에 놔주었다.
그래 이젠 너희 둘이 친해지거라 맘속으로 따스한 우애를 기대하면서…. ‘너희들 장가들면 이러고 싶어도 못해 알지?’
그렇게 북적거리던 집에 오늘은 나 홀로다. 남편은 친구들 만나러 멀리 가고, 큰아인 여자친구 만나러 생글생글거리며 나가고, 지난밤에 비욘세의 춤을 열심히 연습하던 새내기 대학생인 둘째는 2박3일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있어 아침부터 부산을 떨더니 강원도에 갔다. 형이 즐겨 입던 청바지를 꿰차 입고서.
이렇게 눈떠서 잠들 때까지 같이 지내던 가족이 없지만 하늘이 파랗고 햇빛이 맑은 오늘 난 기꺼이 혼자만의 시간이 좋다. 맑고 밝은 밤하늘의 달은 왜 이리 예쁠까?
나 어릴 적 시골 오막살이를 비추던 달빛처럼 당신을 향한 그리움이 샘물이 되어 흐른다.
동이 채 트지 않은 이른 새벽 어머니는 물동이를 이고 아직 물러가지 않은 어둠을 가르며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샘가로 향하곤 하셨지. 밤새 고인 아무도 모르는 첫 샘물 정한수 한 그릇을 떠놓고 가족을 위해 기도드린다.
그렇게 가슴 깊은 정성을 다한 다음 당신은 또 분주히 아침을 짓기 시작한다.
볏짚을 태워 앉힌 콩나물 씻는 소리, 작게 들려오는 토닥토닥 도마질 소리, 아궁이 안 톡톡 솔가지 타는 소리, 석쇠 위에 생선이 익어가고, 가마솥의 누룽지는 숭늉을 만들어내느라 고소하게 김을 내뿜고, 그래서 언제나 달콤한 잠을 물리치는 건 늘 어머니의 아침 짓는 소리였다.
평화로운 이 순간 나는 그때 그 아이가 되어 마음껏 게으름을 피우고 싶다. 지금 밥먹기 싫으면 이따가 먹고, 아이들이 벗어놓은 옷가지도 그냥 내버려둔다. 먹다 둔 과일접시도 우유도. 시간은 좀 느리게 흐르겠지만….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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