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나는 계절을 탐닉하는 버릇이 생겼다. 별 가락도 없으면서도 계절의 미각을 느끼려 용쓴다. 봄엔 매향도 보리숭어의 쫀득거리는 맛도 좋지만 동백꽃에 더 진한 향취를 느끼곤 했다.
짙푸른 둥근 잎 사이를 아장거리는 꽃종들, 검붉은 꽃잎과 배치되는 노란 수술, 미련없이 통째로 뚝 떨어지는 야박성, 그리고 땅에 떨어져 환생의 꿈을 토하는 화락쇼까지….
이렇듯 진한 감동을 주는 남녘의 봄 산사가 좋았다.
모처럼만에 미황사를 찾았다. 꽃피다 만 젊은 음악가의 49재 염불소리가 산사를 슬피 휘감았다.
“응진전 뒤로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어라우.”라고 하시던 식보살님의 해묵은 표정을 떠올리며 현장 확인에 들어갔다. ‘어허….’ 눈을 의심했다.
흐드러지기는 커녕 동백꽃 서너 송이가 숨바꼭질 하는 게 아닌가. 이내 그 연유를 깨달았다. 지난 겨울 매서운 한파가 동백의 춘몽을 앗아간 것이다.
잊혀진 계절의 비애에 젖어 부도전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스님의 목탁소리에 등떠밀리듯 산길로 접어드니 짙푸른 잎 사이 봄햇살 품은 동백꽃이 눈에 들었다.
한파를 견뎌 피어난 동백꽃이 유난히 해맑았다. 깜찍하게 작고 통종처럼 생긴 미황사 동백꽃의 진미를 만끽했다. 자칫 잊혀질 뻔한 봄을 한껏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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