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께서는 몸이 좋지 않으셨는데, 나를 낳고 더욱 허약해지신 관계로 나는 엄마 젖을 다 먹지 못했다. 외할머니는 나를 낳은 뒤 어머니가 허약해졌다며, 내 볼기짝을 사정없이 때리셨단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와 친 할머니는 나를 부둥켜안고 울음보를 터트렸다고 한다.
요즘은 분유천국이니 엄마 젖이 없어도 분유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세상이지만, 내가 태어날 때만 해도 동냥젖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동냥젖이라도 얻어먹을 처지가 못 되었던가 보다. 어머니와 할머니께서 특별하게 만든 미음으로 연명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다리는 참새다리처럼 가늘고 목은 아마 우주인처럼 되었었나보다. 죽지 않고 살아 걸어다닌 것이 신기할 정도였단다.
자라나면서 다리에 힘이 없으니 넘어지기 일쑤요, 정강이는 성할 날이 없었다. 그리고 왜 그렇게 코피는 자주 쏟았던지, 한 끼만 굶어도 코피를 쏟기 일쑤요. 친구와 싸움이 붙어도 먼저 코피가 터졌기 때문에 맨날 맞고만 다니는 처량한 신세였다.
잠을 조금만 못자도 코피를 쏟아내는 내가 교도관 생활을 하며 격일제 야간근무를 해야 했으니 그 고충을 어느 누가 알아나 줄까?
신혼생활 때는 밤에 아내와 조금만 무리를 해도 코피를 쏟아 아내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게 했다. 도무지 세상살이가 왜 그렇게 피맺히게 어려운 것이었을까?
그런데, 아내가 첫아이를 분만하고 모유로 수유를 했는데, 항상 아이가 먹고도 젖이 남아 주체할 수가 없는 것이 아닌가?
수유기를 사다가 젖을 짜서 버려야하는데 그것도 쉽지가 않은 모양이어서 애를 먹어야 했다. 이때다! 하고 생각한 것이 어릴 적에 못 먹은 젖을 실컷 먹어보자는 것이었다. 남은 젖도 무리 없이 해결하고 어릴 적 한도 풀어보자는 것이었다. 아내도 싫지 않은 모양이어서 나는 둘째아이 때까지 젖을 포식할 수가 있었다.
그래서일까? 허약한 내가 제아무리 밤샘을 해도 코피를 쏟는 일이 없는 최강의 사나이가 되었다. 나는 그렇게 아내의 젖을 먹은 덕분에 건강하게 되었다고, 굳게 믿고 살아가고 있다. 그런 아내에게 나는 젖먹을 힘을 다해 사랑하지 못했고, 아프게도 했다.
이제부터라도 나는 젖먹을 힘을 다해 아내를 위해 사랑을 아끼지 않으리라. 젖먹을 힘을 다하지 못했던 내 젊은 날을 한없이 후회하면서.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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