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하루를 여민다. 모든 것이 조용히 어둠에 젖어드는 때, 홀로 고요히 밝음 속에서 타오르고 있다. 나의 하루를 조용히 닫을 때에는 항상 일기를 쓴다. 일기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 나의 의식도 마침표를 찍는다. 자신의 삶을 꼼꼼히 되짚어 보고 음미하지 않으면 매너리즘과 입맞춤하게 된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변화 없는 삶에 지루함을 느끼게 되고 설렘이 더 이상 마음의 문을 두드리지 못한다. 그렇게 나이가 들게 되고 세상의 일에 무덤덤해지게 되는 것이다. 삶의 의미를 찾기 힘들어지고 존재의 가치에 대해서 회의를 갖게 된다.
하지만 우리 삶에는 많은 변화가 있다. 조그마한 변화들이 꽤 많이 일어나고 있고 그것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엄청난 변화로 우리 옆에 자리하게 된다. 창문에 비치는 햇빛의 따사로움이 조금씩 달라지고 거리의 나뭇잎 색깔이 달라지고 얘길 나누게 되는 사람들이 달라진다. 직장인들은 시작하게 되는 일이 달라지고 학생들은 공부하는 내용이 달라진다. 자신에게 달려드는 소소한 변화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인생 전체는 설렘과 기대로 반짝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변화를 성실하게 또박또박 기록해내는 작업은 나의 삶의 가장 중요한 일이다.
몇 년 간의 성실한 흔적은 꽤 많이 쌓여 있다. 가끔 먼지를 훅 불어 꺼내보면 그때의 나와 마주하게 된다. 그때 힘들어 했던 커다란 문제도 지금에서야 조그맣고 문제 같지 않은 문제로 보이지만 치열하게 고민하고 번민했던 열정이 감동하게 만든다. 그때 했던 실수와 게으름을 보면서 몇 년이 지난 오늘은 더욱 힘껏 살았구나 하며 뿌듯해 한다. 나의 과거를 꼼꼼히 되짚어 보고 앞으로의 나를 철저하게 계획할 수 있는 소중한 보물인 것이다. 그리고 잊었던 소중한 추억들을 길어 올릴 수 있다. 내가 보며 감동 받았던 영화, 아름다움에 한껏 취해서 정신이 몽롱했던 풍경, 오감을 자극했던 맛집들. 세상일에 시달리고 이리 저리 치이면서 나의 삶 속에서 조금 비껴 나 있었던 모든 것들과 마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난 삶이 고달프고 도피하고 싶을 때마다 나의 서랍장 낡은 일기장을 꺼내어 본다.
나의 삶은 비단 종이에 기록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건 조그마한 개인적 공간에 머무르는 것이다. 난 커다랗게 써나가기도 한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 거닐었던 곳, 같이 머물렀던 곳, 목표로 하며 달려간 곳 등 나의 발길이 닿는 모든 공간에 추억의 씨앗을 심는다. 그때의 코를 자극했던 향긋함과 사람들의 향기를 철저하게 기억해 그 공간에 담아둔다. 그래서 다시 그곳을 찾게 되면 씨앗이 자라 훌쩍 커버린 나무와 마주한다.
더운 날은 그의 그늘에 앉아 쉬고 추운 날은 그의 뒤에 웅크린 채 쉰다. 그래서 난 되도록 같은 길을 가지 않으려 한다. 삶은 유한하기에 온누리에 내 추억의 씨앗을 심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 삶의 새로움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정신의 청춘. 그것은 오직 자주 추억하고 반성하고 후회하며,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긍정과 희망에 부풀어 바라보는 것이다. 나아가 세상일의 변화에 많이 귀 기울이고 많이 시선을 던지는 것이야말로 내 인품의 향기를 깊고 그윽하게 만드는 것이다. 시간이 이끄는 대로 끌려다니지 않고 나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 난 오늘도 하루를 조용히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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