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도로가 아스팔트 포장으로 바뀌고 면소재지는 제법 도시의 모습으로 불야성이 되기도 하지만 중학교 1~2학년 때 전기가 들어 올 정도의 해변가의 아주 작은 시골마을에서 자란 나는 어린 시절 봄에 대해 두 가지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던가. 염병(장티푸스)을 크게 앓았었는데 동네에선 내가 죽었다고 소문이 났었나 보다. 거의 2개월 여를 앓았던 것 같다. 기력이 좀 회복된 어느 봄날. 해우건장(김말리는 곳)에 쪼그려 앉아 햇볕을 쪼이고 있는데 지나가던 동네 아주머니들께서 “너 살아 있었구나” 하셨다. 그 때 느낀 봄은 늘어지는 따사로움이었다.
그리고 좀 더 커서 약간은 씩씩하게 된 초등 고학년 시절 학교생활 빼면 산과 들 그리고 개울과 저수지가 주 무대이던 시절. 봄은 겨우내 구들장 짊어졌던 어린 망아지들에게 해방의 시간과 공간이었다. 서릿발 흔적으로 푸석해진 황토언덕을 뛰고 지난 가을 뒷산에 만들어 놓은 아지트도 점검하고 송피(송쿠) 벗겨 먹고 진달래 따먹던 봄날은 새로운 에너지로 충만한 계절이었다.
조금 지나 늦봄 초여름으로 넘어가면 버들피리 닐리리~싱그러운 신록 아래 보리 풋바심으로 온 손바닥이 시커멓고 아직은 여린 개구리 뒷다리는 육질 귀한 시절 중요한 영양원이었다.
그런데 머리통 커져 대처로 진학하고 세상을 알아갈수록 봄은 어린 시절 봄이 아니었다. 특히 도시의 봄은 더욱 느낌이 없었다. 자연도 세상도 미쳐서 도는지 약 먹고 도는지 그 땐 그 생각만 들었다. 봄이 와도 겨울공화국.
그런데 세상이 별로 달라지지도 않은 요즘 봄이 다시 눈에 잡히고 마음에 온다. 도시의 골목길 담벼락에 걸친 개나리도 보이고 도로변 쌈지공원의 목련이 눈에 걸치는가 하면 무언지 알 수 없는 기운이 까닭 없이 가슴을 뛰게도 한다. 왜 그럴까? 가만 생각해 보니 아뿔싸! 내가 늙어가고 있다.
오늘은 어린 시절 팔팔한 봄날을 그리며 맘 맞는 친구 하나 불러 황사 모래 서걱이는 소주나 부어야겠다. 개나리 진달래에 삼겹살 버무려 구워놓고 잠시라도 세월을 잡아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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