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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어버이날은 왔습니다.
엄마 가슴에 대못질을 해놓고 난 뒤 못난 딸 뒤늦게야 회오어린 참회를 해봅니다.
어느덧 이만큼 시간이 흘러 처음으로 당신께 마음을 전합니다.
늘 옆에 항상 그 자리에 계실거란 생각에 엄마의 소중함을 모르고 그날도 아무런 생각 없이 툭툭 말을 내뱉고 말았습니다.
서른 넘은 막내 동생 결혼 못한 것이 무슨 엄마의 죄라고 그렇게 몰아붙였을까요.
아빠 없는 4남매 뒷바라지에 엄마도 가슴이 까맣게 타들어갔을 텐데요. 제 거친 말투가 엄마에게 상처가 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당신이 계시기에 지금의 내가 있고, 지금의 우리가족이 평안하게 살고 있다는 걸 왜 깨닫지 못한 걸까요.
제 공격적인 말투에 대해 주위에서 여러 번 지적을 받았지만 심각하게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그냥 내 엄마니까 아무렇지 않게 내 감정이 실리지 않는 말이어서 그냥 그렇게 넘겼는데 주방 끝에 혼자 앉아 굵고 투박한 손으로 눈물만 훔치는 걸 보는 순간 가슴 한쪽이 멍해지는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엄마 때문에 미어지는 감정은 처음 느껴본 순간이었습니다.
왜 엄마도 여자라는 걸 인식하지 못하고 살았을까요? 지금 내 나이에 아빠를 보내시고 4남매를 홀로 지금껏 뒷바라지 해주시고 계시는데 혼자 계신 서러움이 얼마나 시리고 아프셨을까 생각해보지 못했을까요.
당신의 손에 카네이션 바구니 하나 건네드리면서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 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을까요.
겸손이 뭔지, 감사하는 마음이 뭔지도 모르고 의례적인 행사 치르기 식의 행동을 했을까요.
엄마! 사랑합니다.
혀끝에 맴도는 한마디가 왜 그리 하기가 쉽지 않은 걸까요. 엄마 건강하세요. 언제나 나의 옆에 고마운 엄마가 계시다는 걸 지금에야 깨닫습니다.
어느 날인가 엄마의 모습 속에서 돌아가신 할머니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엄마는 늙어가고 있었습니다. 곱디곱던 젊은 시절의 모습은 자취를 감춘 지 이미 오래….
왜 몰랐을까요.
왜 이렇게 어리석었을까요. 자학을 하고 뒤돌아서니 우리 아이가 한마디 합니다.
“엄마, 나도 커서 엄마가 할머니 되셨을 때 엄마처럼 마구 언어폭력을 했으면 좋겠어? 할머니는 200살까지 오래 사셔야 한단 말이야. 왜냐하면 우리가 장가가도 할머니가 밑반찬을 해줘야 한다고, 엄마 반찬은 맛이 없잖아.”
아이의 말에 뒤통수를 야무지게 한 대 얻어맞은 듯합니다. 입가에 쓴웃음이 묻어납니다. 아이가 저를 가르칩니다.
비록 밑반찬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아이의 말 속에서 할머니의 위치가 얼마나 큰지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엄마, 죄송해요. 뒤늦게 철이 든 딸이지만 엄마에게 더 잘해드릴게요.
다시는 엄마의 눈에 눈물 나지 않게 할게요.
우리 곁에 오래오래 건강하게 지금처럼 계셔주세요.
진정으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엄마에게 보냅니다.
엄마, 사랑해요.
해남우리신문
wonmok76@hanmail.net
